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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나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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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업계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과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를 가장 두려워한다. 죽음의 계곡은 혁신적 기술을 개발했지만 험난한 인허가 과정 등을 뚫고 양산까지 가려면 막대한 추가 투자가 이뤄지는 과정을 빗댄 것이다. 다윈의 바다는 양산에 성공해도 시장에서 기존 제품들과 경쟁하다 보면 상당기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실제로 100개의 혁신기술 이 만들어져도 죽음의 계곡을 넘어 다윈의 강까지 건너는 것은 겨우 0.6개에 불과하다.
두 난관 모두 문제지만, 일단 한국에서는 죽음의 계곡이 더 큰 문제다. 대규모 임상 3상 시험에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데다가, 임상 과정에서 자칫 실수라도 있으면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한다. 코스닥에서 바이오 황제주로 이름을 날렸던 한 제약사의 경우 개발 중이던 면역 항암제 임상 3상 시험을 중단하면서 시가총액 2조 원이 날아갔다. 또 다른 제약사는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했다가 임상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투자비용을 건지기는커녕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에서 신약개발은 막강한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만 할 수 있는 영역으로 굳어져 왔다. 우리나라에서 블록버스터급 약물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없었던 이유다. 기술력이 뛰어나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등을 납품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대기업조차도 신약개발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K-신약 개발이 가능할까. 전문가 입장에서 본다면 긴급사용승인제도를 활용하면 가능하다. 평시라면 3상의 임상 시험을 온전히 완료해야 하겠지만, 코로나19 사태처럼 보건 위기가 닥쳤을 때는 까다로운 인허가 문턱을 대폭 낮출 수 있어서 약품을 한시적으로 승인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 모더나 등의 코로나19 백신도 긴급사용승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미국의 제약사들은 세계 백신과 치료제 시장을 조기 선점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 바람에 다른 나라의 경우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손을 놓아버렸다. 이 같은 긴급사용승인 제도는 백신과 치료제뿐 아니라 진단기기에도 적용되어 팬데믹 시절 우리 중소업체들이 글로벌 의료시장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한 바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 팬데믹 위기에서 우리나라의 토종기업들이 백신과 치료제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당국의 유연한 규제 대응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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