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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단골 행사 '공포 체험' 홍수… 자극 설정에 '헛발질'도

입력
2023.08.09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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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비용 큰 효과, 가성비 높은 아이템
눈길 끌기 위해 아픈 역사 소재 등 '눈살'
"지속성 위해, 지역 정체성 등 담아내야"

지난해 8월 열린 경북 경주엑스포대공원 루미나 호러나이트에서 관람객이 쇠사슬에 묶인 괴인을 피해 지나가고 있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제공

지난해 8월 열린 경북 경주엑스포대공원 루미나 호러나이트에서 관람객이 쇠사슬에 묶인 괴인을 피해 지나가고 있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제공

지방자치단체들이 한여름 무더위를 날리는 ‘공포체험’ 행사를 잇따라 선보이며 피서객을 유혹하고 있다. 기술의 힘을 빌린 요즘 납량 행사는 단순히 소리나 움직이는 귀신을 활용해 관람객을 놀라게 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해 상상의 영역이었던 공포의 세계에 직접 들어가 보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전문 연극배우들이 직접 출연해 완성도를 높인 이벤트도 적잖다. 그러나 참가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자극적’ 콘텐츠에만 몰두하다 보니 부작용도 종종 발생한다. ‘731 부대’를 소재로 기획했다가 ‘뭇매’를 맞고 철회한 울산의 ‘태화강대숲납량축제’가 대표적이다.

더울 땐 역시 공포 체험

지난해 8월 12일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열린 대숲납량축제에서 귀신 분장을 한 연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지난해 8월 12일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에서 열린 대숲납량축제에서 귀신 분장을 한 연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울산시 제공

8일 전국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국내 최대 규모 공포 축제로 꼽히는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의 ‘심야공포촌’이 지난달 28일부터 진행 중이다. 관아의 옥사를 통과하는 ‘옥사창궐’, 한이 맺힌 귀신을 찾아 미션을 수행하는 ‘미명귀전’, 으스스한 초가집에서 듣는 ‘속촌괴담’ 등 매일 밤 12시까지 22가지 공포콘텐츠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경북 경주엑스포대공원은 오는 20일까지 국내 최장거리 야외 호러체험 ‘루미나 호러나이트-악귀의 숲’을 준비했다. 1년 전 갑자기 소식이 끊긴 친구로부터 숲에서 구해달라는 편지를 받고, 비책이 담긴 방울을 챙겨 악귀들이 사는 숲으로 간다는 스토리로 꾸며진다. 참가자들은 1.6km 구간에 걸쳐 모두 14개 포인트로 구성된 야외 숲에서 악귀를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데, 비가 오는 날은 공포심이 배가 된다. 엑스포공원 관계자는 “세트가 아닌 자연에서 즐기는 체험이다 보니 훨씬 으스스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다”며 “주말에는 1,000명, 평일에는 600여 명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2시간 30분 동안 염라대왕, 처녀귀신, 몽달귀신 등과 함께 버스를 타고 극한의 공포체험을 즐기며 부산 주요 야경을 둘러보는 여행 상품 ‘썸머 호러나이트’도 눈길을 끈다. 경북 청도군은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신도리 구미호뎐’을 운영하는데 올해는 전문 연극배우들을 섭외하는 등 완성도를 높이면서 입장권이 조기 매진됐다.

'가성비' 좋다지만...

'731부대'를 체험 프로그램으로 기획해 논란이 된 제16회 울산 태화강대숲납량축제 홍보물. 인터넷 캡처

'731부대'를 체험 프로그램으로 기획해 논란이 된 제16회 울산 태화강대숲납량축제 홍보물. 인터넷 캡처

지자체들이 공포체험 행사에 공을 들이는 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축제 기본 메뉴로 굳어진 인기 가수를 섭외할 필요도 없고, 수천만 원을 들여 밤하늘에 불꽃을 쏘지 않아도 참가자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아이템인 것이다. 최근 친구들과 함께 한국민속촌 공포체험을 다녀왔다는 이민영(24)씨는 “곳곳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귀신들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며 “스트레스도 풀리고 더위도 싹 가신 느낌이었다”고 했다. 실제 공포체험은 체온을 낮추고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문제는 비슷한 유형의 행사가 쏟아지면서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프로그램이 여과 없이 생산된다는 점이다.

오는 11일부터 열리는 울산 ‘태화강대숲납량축제’는 ‘731부대’를 내세웠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일본의 세균전 부대를 프로그램에 끼워 넣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없다. 주최 측은 뒤늦게 대밭에서 죽은 영혼소리가 난다는 설정의 ‘대밭상회’로 변경했으나 실망스럽단 목소리는 여전하다. 교도소 세트장을 공포체험장으로 꾸며 행사를 진행했던 전북 익산시청 홈페이지에도 “자녀들이 왜 공포체험을 하기 위해 교도소 세트장을 가야 하느냐. 더 건전하고 건강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항의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점점 더 자극적인 공포 콘텐츠에 대한 경쟁은 장외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튜버들이 올리는 불법 흉가체험 영상이다. 영상 속 장소 중에는 정부가 1970년대 초부터 20년간 미군 기지촌 ‘위안부’를 강제로 격리수용했던 경기도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를 비롯해 과거 무고한 시민을 강제 수용한 뒤 인권유린을 자행한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부산 기장 실로암의 집 등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 수두룩하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공포감만 극대화시키는 단순한 논리로는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축제평가위원인 강준수 안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당장 흥행을 끌 수 있는 것에만 몰두하면 차별성 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만 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며 “똑같은 공포체험이라 해도 친구, 가족, 연인 등 대상을 정확히 정해 지역의 정체성을 엮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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