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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전관들이 누린 '프리패스'... 임원이 심사 없이 용역업체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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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상임이사로 재직한 A씨는 같은 해 9월 S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S사는 이번에 문제가 된 '철근 누락' LH 아파트단지 15곳 중 1곳의 설계와 3곳의 감리를 맡아 가장 많은 지구에 참여한 업체 중 하나다. 2018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LH로부터 수주한 설계·감리 용역 계약금만 603억여 원에 이른다.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A씨는 본부장 재임 시절 본인이 몸담고 있던 본부에서 S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현재 대표로 가 있다. 단순 전관예우가 아니고 카르텔 같은 관계"(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A씨는 S사 대표로 옮기는 과정에서 '과연 이 같은 재취업이 적절한지'에 대한 아무런 판단을 받지 않았다.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설립 이후 퇴직자 취업사실신고 목록'을 보면, A씨와 S사 이름이 없다. S사에는 A씨를 포함해 LH 1급 이상 퇴직자가 4명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재취업 심사를 통과한 게 아니라 심사 자체를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재취업 심사를 생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제도에 있다. 취업제한 대상에 해당하는 공직자는 퇴직 후 3년간 '취업 심사 대상 기관'에 취업하는 경우에 한해 업무 관련성 여부를 심사받으면 된다. A씨 본인은 LH 임원이었기 때문에 2020년에도 당연히 취업 심사 대상자였다. 하지만 S사는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이 아니었다. '자본금 10억 원 이상이면서 1년 외형거래액 100억 원 이상인 영리사기업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서다. 지금도 법인 등기부등본에 명시된 S사 자본금은 2억 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LH 고위직 전관들의 관련 업체 '프리패스'는 광범위하게 퍼져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사혁신처가 고시한 2023년 취업 심사 대상 기관 목록에 따르면, 철근 누락 아파트에 참여한 LH 전관 설계업체 9곳 중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 업체는 단 한 곳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LH 전관으로 지목된 감리업체 11곳 중 3곳만 취업 제한 대상에 해당됐다. 나머지 업체에는 LH 퇴직자가 직급이 무엇이었든 어떤 업무를 했든 상관없이 취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5년간 LH로부터 감리 36건(총 735억 원)을 수주해 해당 분야 1위에 오른 M건축사사무소의 경우도 자본금 5억4,000만 원으로 심사 없이 재취업이 가능했다. M사는 앞서 붕괴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을 감리했고, 이후 밝혀진 철근 누락 단지 15곳 중 4곳에 참여했다. M사에는 1급 이상을 포함해 LH 퇴직자 22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LH 투기 사태' 이후인 2021년 6월 공개한 'LH 혁신 방안'에서 "취업제한 대상자를 상임이사 이상에서 2급 이상 직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2급 이상 직원이 '해체 수준 혁신'이 맞느냐'는 비판이 들끓었지만, 정부는 "이번 조치로 취업 제한 대상자가 7명에서 529명으로 증가한다"며 적극적인 '전관 혁파'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취업 제한 대상자를 아무리 늘린다 해도 관련 업체 상당수가 취업 제한 기관이 아닌 상황에선 아무런 효과가 없는 셈이다.
박정하 의원은 "퇴직공직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취업 심사제도를 취지에 맞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LH 사태 당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혁신안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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