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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든 자를 상대할 경찰관을 위하여

입력
2023.08.0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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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 발생과 살인 예고 등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 6일 서울 강남역사거리에서 경찰특공대원이 순찰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 발생과 살인 예고 등으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 6일 서울 강남역사거리에서 경찰특공대원이 순찰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연이은 칼부림 사건으로 경찰이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 뒤 맞은 첫 번째 주말. 쇼핑몰에선 경찰관들이 2인 1조 도보순찰을 하고 있었다.

민심이 흉흉한 이때, 경찰이 시민 가까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건 올바른 접근이다. 놀란 민심 달래는 효과로 볼 때, 차량을 이용한 기동순찰에 비해 제복경찰관의 도보순찰이 더 유용하다. 휙 지나가는 순찰차보단 바로 뛰어올 수 있는 경찰관이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줄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요 거점 지역에 장갑차와 경찰특공대를 배치한 게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예비 범죄자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현시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오버액션’도 지금은 필요하다. 물론 특별치안활동은 경찰관들의 연장근무 없인 불가능한 일이기에, 일선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경찰 지휘부의 몫이겠다.

걱정스러웠던 점은 도보순찰 경찰관들이 착용한 장비다. 2인 1조 경찰관들은 한 사람이 지름 40㎝ 정도의 조개 모양의 작은 방패를 들었고, 나머지 한 명이 테이저건을 착용한 게 전부였다. 한 명이 방패로 막는 사이 다른 한 명이 후방에서 테이저건을 쏘아 제압하는 체포술이 쓰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집마다 몇 자루씩 두고 있어 별거 아니란 생각을 해서 그렇지, 칼은 순식간에 사람 몸에 치명상을 내는 강력한 흉기다. 칼을 이기기 어렵다는 점에선 경찰관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호신술로 흉기 든 범죄자를 막으려면, 경찰관도 수년의 훈련이 필요”(서울경찰청 교관 김영주 경위)하다고 한다.

근거리에선 총보다 위력적일 수 있다. 미국 경찰엔 ‘21피트룰’이란 게 있는데, 칼 든 범죄자를 총으로 쏘아 쓰러뜨리려면 최소 21피트(6.4m) 거리를 확보하라는 원칙이다. 허나 한국 경찰의 테이저건 유효사거리는 고작 3, 4m에 불과하다.

자, 용케도 이런 난관을 헤치고 경찰관이 테이저건을 쏴 칼 든 범죄자를 무사히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고난은 다시 시작된다. 상식적으로 그는 찬사나 표창을 받아야겠지만, 실제론 청문감사관실에 불려가 감찰조사를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부턴 범죄자 건강상태를 걱정해야 한다. 범죄자가 중상이거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라면, 목숨 걸었던 경찰관이 오히려 처벌을 받거나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실제 판례를 보면 흉기를 든 피의자가 테이저건에 맞은 뒤 자기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서 국가 배상책임이 인정됐다.

경찰청장이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관련 법률이나 지원책을 마련하기 전엔 면책이 말처럼 쉽진 않을 거다. 검사가 유사 사건을 기소하고 법원이 이렇게 판결하는데, 경찰 힘만으로 조직원들을 보호하긴 어렵다.

칼부림이 잇따르고 흉기 범죄에 대한 미약한 대응이 이어진다면 ‘전 세계 최상위 치안’이란 홍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인구당 강력범죄 건수나 검거율 등 통계로야 최상위권이 맞지만, 칼부림 장면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전송되고 살인예고 글이 일파만파 퍼지는 환경에선 숫자가 세상의 불안을 달래 주진 못한다.

경찰관이 빠르게 달려오는 것 못지않게, 위협에 강하게 대응할 거란 믿음을 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 경찰관과 시민 생명을 노리는 사건에서 전반적인 면책을 보장하지 않는 한, 칼 든 범죄자를 에워싼 경찰관들이 삼단봉만 들고서 범죄자 손짓 한 번에 몰려다니며 허둥대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

이영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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