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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행복한' 동물복지 1호 농장주 "아직 갈 길 멀다"

입력
2023.08.07 11:00
수정
2023.08.07 12:5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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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동물복지]
거창 동물복지 인증 농장 가보니
"동물복지 도축장 전국에 3곳"
"기반시설 부족, 농가 부담 가중"

3일 경남 거창에서 만난 김문조 더불어행복한농장 대표가 임신한 어미 돼지 우리 앞에서 동물복지 사육법을 설명하고 있다. 거창=변태섭 기자

3일 경남 거창에서 만난 김문조 더불어행복한농장 대표가 임신한 어미 돼지 우리 앞에서 동물복지 사육법을 설명하고 있다. 거창=변태섭 기자

30도를 훌쩍 넘긴 불볕더위에도 우리 안은 평온해 보였다. 옴짝달싹 못하는 철제 사육 틀(스톨)에서 ‘해방’된 돼지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콘크리트 바닥 대신 두껍게 깔린 볏짚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스톨을 썼다면 50마리 넘게 들어갔을 공간에 사육 중인 돼지는 25마리 남짓. 김문조 대표는 “늘 인상을 찡그린 스톨 사육 돼지와 달리 우리 돼지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에 폭염에도 잘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돼지 친화적인 사육 환경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진다. 3일 경남 거창 소재 더불어행복한농장에서 만난 김 대표는 “올해 모돈당 연간 이유두수(PSY)를 30두까지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PSY는 어미 돼지가 1년에 낳는 새끼 돼지 수다. 생산효율성이 얼마나 높은지 나타내는 지표로 이 농장의 PSY는 27두다. 국내 연평균은 17두 안팎이다.

김 대표는 “사람 시선이 아닌, 돼지 눈높이에서 사육 여건을 마련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농장은 2016년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인도적으로 수송·도축한 축산물에 부여하는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 1호 농장이기도 하다.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그 역시 많은 부침을 겪었다. 신축·증축을 할 수 없어 사육 규모를 절반 가까이 줄였고, 동물복지 사육 방법을 몰라 스톨 사육 당시 90% 이상이던 분만율이 65%까지 떨어졌다. 임신한 어미돼지 10마리 중 6, 7마리만 새끼를 낳고 나머지는 유산·사산했다는 뜻이다. 값이 오른 고기를 공급할 유통망 구축에도 애를 먹었다.

3일 경남 거창군 더불어행복한농장에서 임신한 어미 돼지들이 볏짚 위에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거창=변태섭 기자

3일 경남 거창군 더불어행복한농장에서 임신한 어미 돼지들이 볏짚 위에서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거창=변태섭 기자

그는 “양돈농장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만든 지 10년 됐어도 인증 농장 비중이 1%가 안 되는 건 이 때문”이라며 “동물복지 사육법 보급과 소비자 인식 확대, 시장 형성에 대한 고민 없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해외 제도만 들여오니 농가의 외면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양돈농가는 지난해 기준 18곳이다. 2021년(16곳)엔 인증 포기 농가까지 나오면서 오히려 전년(19곳)보다 줄었다.

김 대표는 “동물복지 정책이 엉터리로 운영되고 있다”며 경기 안성과 충남 논산, 충북 음성 등 전국에 3곳밖에 없는 동물복지 도축장을 예로 들었다. 올해 6월 음성에 생기기 전까진 2곳에 불과했다. “통상 살아 있는 가축을 1시간 이상 운송하는 건 동물복지에 어긋난다고 보는데, 우리 농장만 해도 도축을 하려면 경기 안성까지 3시간 넘게 가야 합니다. 기반시설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복지 농가 확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죠.”

운송비 부담 증가와 도체율 하락 등 추가 손실도 농가 몫이다. 도체율은 도축 후 나오는 고기의 비율이다. 통상 76% 안팎이나 장거리 운송 시엔 스트레스로 체중이 줄어 1, 2%포인트 하락한다.

김 대표는 “유럽은 동물복지 인증제 시행 이전에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10여 년 넘게 시간을 쏟았다”며 “이제라도 공감대 형성에 나서야 하고, 동물복지 농가가 짊어진 경제적 부담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창=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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