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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 강의평가에 짓밟힌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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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게 됐을 때 주변에서 들었던 조언은 “학생들의 상향식 강의 평가를 읽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내가 그 조언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처음 맡게 된 강의였고, 모교 후배들을 가르친 터라 더 열정적으로 임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강의 평가를 봤는데···.
그만,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난생처음 손이 벌벌 떨리는 경험을 했다. 당장, 학과장에게 전화해서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교재로 정한 책의 내용을 PPT에 담아서 강의했는데, 교재를 한 번도 안 보면서 왜 책을 두 권이나 구입하라고 했냐는 내용도 있었고, 병원 진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리 양해를 구하고 늦게 강의를 시작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거짓말도 있었다. 폐강을 하는 게 낫다는 내용도 있었다.
강의 평가 중 가장 기함(氣陷)했던 내용은 ‘질문이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 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를 할 때였다. 줌(Zoom)을 통한 온라인 강의의 단점은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의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수시로 질문을 던졌는데, 강의 평가에 그 점이 비판적으로 기술돼 있었다. 물론 “감사하다”는 인사와 긍정적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부정적인 것을 잘 기억하듯 강의 평가도 안 좋은 내용이 더 오래 남는다.
이런 강의 평가의 문제는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평가를 거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평가가 계약직 교수나 시간강사에게는 재계약이나 재임용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이런 신분의 교수자들은 강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인기 과목의 강의를 따라 하게 된다. 그런데 대개 평가가 좋은 인기 과목은 학생에게 점수를 잘 부여하고 과제를 덜 내주는, 학생 부담을 주지 않는 수업이다. 발표 수업도 최소화해야 한다. 설혹, 학생에게 발표를 시키더라도 잘못된 점을 바로 지적하면 안 된다. 요즘 학생들은 대중 앞에서 평가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업은 되도록 일찍 끝내야 한다. 적어도 20분 전에는 끝내주는 것이 좋다. 강의 시간을 꽉 채워 수업하는 것도 평가 점수를 깎아 먹는 일이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지 않은가? 대학에서 강의 평가가 이뤄지는 이유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확인하고 학습의 질을 올리기 위함이다.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강의 평가 제도는 본연의 기능을 잃었다. 그래서 강의 평가를 아예 읽지 않는 교수자들도 많은 것이다. 악의적인 강의 평가는 교수자에게 깊은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학술연구 교수가 돼 가장 좋은 점은 강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붕괴된 교권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분노한 교사들은 30도가 웃도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거리로 나와 ‘교권 보호’를 외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초중고 교사들의 교권만 붕괴된 것은 아닐 것이다. 유치원 교사들도 교권 침해 사례를 겪는다. 물론 학부모를 통해서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교권 침해’에 대한 모든 사안이 개선됐으면 한다. 부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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