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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판, 성주신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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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8년 영화 ‘신과함께-인과연’에서 배우 마동석은 손자 현동과 사는 허춘삼 집의 성주신으로 나와 삼차사가 할아버지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걸 막는 연기를 폈다. 민속 신앙에서 성주신은 가택과 가족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다. 제사를 지낼 때 성주상부터 차리고 이사할 때에도 성주단지를 챙기는 연유다. 이런 성주신은 집의 대들보를 올릴 때 자리를 잡는다. 대들보는 세로로 선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천장과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가로 구조물인 들보(량·梁) 가운데 가장 큰 보를 일컫는다. 그래서 대들보를 올려 집의 골격을 완성하는 상량식은 가장 중요한 공정이자 의식으로 여겨졌다. 상량문을 대들보에 쓰고, 성주신을 상량신으로도 부르는 이유다.
□대들보가 없는 집은 성주신이 깃들 수 없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건축 기술이 점점 발전하며 대들보를 생략한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없을 무(無)자를 쓰는 무량판 구조다. 들보 자리만큼 층고를 높일 수 있고 원가와 공기도 줄일 수 있어 아파트 등에도 확산됐다.
□그러나 무량판 구조는 가로 보가 없는 만큼 천장의 하중이 기둥이 서 있는 지점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반드시 기둥과 천장이 만나는 접합부에 하중을 분산할 수 있는 구조물을 보강해줘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천장이 기둥 부분만 남긴 채 무너져 내리며 기둥이 천장 위로 솟는 펀칭이 발생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그랬다. 당시 건물 천장(위층 바닥)이 그대로 주저앉아 아래층 바닥과 맞닿은 채 켜켜이 쌓인 모습은 팬케이크의 단면을 떠올리게 했다. 사망자는 500명도 넘었다.
□초전도체까지 나온 기술의 시대, 무량판 구조 자체에 죄를 물을 순 없다. 문제는 그동안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비례해 이를 뒷받침할 인간의 양심은 나아진 게 없다는 데 있다. 설계도면대로 공사하는 건 기본적인 약속인데 이런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는 게 우리 수준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인 철근 빼먹기도 순살 아파트로 재연됐다. 지옥에서 천벌을 받을 짓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지금 대들보도 뼈대도 없이 위태롭게 서 있는지 모른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비극은 반복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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