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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희망 대신 진실된 절망으로… 암흑의 폴란드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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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꺼내 보는 '다시 본다, 고전'이 두 번째 시즌을 엽니다. 한국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마다 글을 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집에서 자신에게 늘 용기를 주었던 한 시인의 말을 인용했다. "원천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1924~1998)의 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동료 시인 쉼보르스카는 신문에 깊은 우정을 담아 부고를 쓰기도 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헤르베르트가 새로운 시를 발표하기를 기다렸다. 그의 시집은 출간될 때마다 항상 시를 사랑하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예술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곤 했다."
시류를 지배했던 모든 도그마를 거부한 자유와 저항의 시인, 헤르베르트는 폴란드의 르부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소련의 압력으로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곳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나치 점령 기간 동안 지하 독립운동 단체가 비밀리에 운영하던 고등학교 야학 과정에 다녔고 반나치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인생이 통째로 파란만장했다. 그의 10대는 2차 대전의 한복판에서, 20대는 스탈린식 철권통치 아래에서 흘러갔다. 그가 알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이 전쟁터에서 죽어갔다.
초등학교 시절, 그에게 자연 과목을 가르쳤던 젊은 선생님도 그중 하나였다. "그의 권유로/ 열 살이 되던 해/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팽팽한 기다림 끝에/ 물속에 담긴 밤송이에서/ 노란 새싹이 움트는 순간/ 사방에서/ 만물이 노래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역사의 불한당들이/ 죽였다 자연의 스승을"('자연 선생님') 강낭콩과 밤송이를 유리 샬레 위에 올려두고 아이들에게 생명과 만나는 순간을 보여주길 좋아했으며 짚신벌레와 풍뎅이를 관찰하며 행복해했던 젊은 교사는 전쟁터로 간 뒤 다시 교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비'에서는 "내 형"이었던, 조용하고 내성적인 전사자의 마지막이 그려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이들은 모두 안다. 한밤중에 일어나서 수없이 혼자 묻고 답하는 질문이 있다는 걸.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낯선 지역의 전선에 배치된 어린 군인은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포화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 누워있다. 그는 홀로 죽어가며 섬망에 시달린다. "고함쳤다/ 이것이 마지막 십자군 원정이라고/ 곧 카르타고가 함락될 거라고/ 그러더니 흐느끼는 와중 고백했다/ 나폴레옹이 자기를 싫어했다고." 물론 사경을 헤매는 사람의 헛말이다. 시 속의 형은 2차 대전의 전장에 있으니 중세 십자군 원정, 고대 로마의 카르타고 전쟁, 19세기 초에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나 시인은 "내 형"의 횡설수설을 통해 세계사의 전쟁들을 호명하고, 모든 전장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의 고독하고 참혹했을 마지막 순간을 되풀이한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파괴된 집을 고치고 길가의 잔해를 치우며 전쟁의 흔적을 지운다. 계절마다 내리는 비는 도시에 떨어진 포탄 냄새도 피의 얼룩도 지워줄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시인은 이렇게 쓴다. "우리가 보기에/ 그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감각이 그를 떠났다/ 천천히 그는 하나의 기념물이 되어갔다// (……) 사람들이 내 형을 데려가/ 도시 밖으로 쫓아냈다// 가을이면 그가 돌아온다/ 호리호리하고 무척이나 조용하다/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그가 창을 두드리고 내가 나간다// 우리는 함께 걷는다 거리를/ 그리고 그가 내게 들려준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내 얼굴을 만지며/ 울음의 눈먼 손가락으로 말이지."
시인은 가늘게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존재가 된 형이 촉각만 남은 채 다시 도시를 찾아온 거라고 생각한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면 그는 수줍음이 심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형을 위해 거리로 나간다. 얼굴을 적시는 비를, 형이 흐느끼며 눈먼 손가락으로 그리운 동생의 얼굴을 만지는 거라고 느끼면서.
헤르베르트는 아무리 슬프고 힘들더라도 삶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매일매일 결심하는 사람 같다. 그가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포위 공격 받는 도시에서 온 소식')라고 중얼거릴 때 그는 자신의 결심이 지닌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고통을 회피한다는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겠다는 뜻이다. 고통은 내 얼굴이든 다른 이의 얼굴이든 언제나 누군가의 얼굴에 깃들어 우리를 찾아온다. 그래서 시인의 상상은 아무리 괴로워도 "고통에서 고통으로 정확하게 이어진다"('판 코기토와 상상') 그는 자신이 "누군가 어제 죽었고 누군가 돌아버렸고/ 누군가 밤새도록 절망적으로 기침을 했던"('로비고')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런 삶의 감각에서 놀랍도록 인상적인 시 '하늘에 못 하나'가 쓰인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파랑이었다: 물기 없고, 단단하고, 너무 맑아, 숨이 멎을 정도였다. 거기서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엄청난 공기 천사들이.
그건 갑자기 내 눈에 못 하나 들어왔을 때까지, 녹슨, 하늘에 비스듬히 박힌 못 하나가. 노력했지 그것에 대해 잊으려고. 소용없었다, 내 눈 구석이 계속 붙들고 늘어졌다 그 못을.
하여 내 하늘 가운데 무엇이 남았나? 눈언저리 멍든 파랑." ('하늘에 못 하나' 전문)
시인은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없다. 가닿을 수 없는 높이의 파랑을 전해주려는 듯 대기에 있던 흰 구름들이 모두 투명한 천사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온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커다란 수조 속에서 수많은 산소 방울이 솟아날 때처럼 얼굴로 맑은 공기를 뿜어대는 기분이 드는 신선하고 시원한 파랑이었다. 그런데 눈물 한 방울, 티끌 한 점 없을 것 같은 하늘에서 그는 오래전에 박힌 녹슨 못 하나를 발견한다. 최상의 아름다움을 얼룩지게 하는 작고 낡은 못이었다. 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잊을 수 없으며 아름다움의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인을 따라다니는 작은 못 하나 때문에 결국 하늘의 색이 달라진다. 그 못은 누군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의 맑은 눈동자에 역사가 망치질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은 작고 하찮으니 그의 전 생애를 못질하는 데엔 큰 못조차 필요 없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못 하나가 시인이 올려다보는 하늘을 내 생애 가장 슬픈 파랑으로 바꿔버린다. 이렇게 그에게 아름다움은 항상 통증과 연결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헤르베르트의 절망과 비관주의를 불편해할 테지만 시인은 '맨해튼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절망은 유익한 감정입니다. 욕망이나 희망을 지워주는 세제지요. '희망은 어리석음의 어머니이다.' (이건 폴란드 속담이에요.) 나는 희망이 싫습니다." 이 말은 거짓 희망에 대한 경계다. 폴란드는 유럽의 약소국가로서 많은 비극적 사건을 겪었다. 1939년 소련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포로가 된 폴란드 장교 4,000명을 이듬해 카틴 숲에서 학살했다. 그곳에는 시인의 삼촌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 살해당한 시민까지 합치면 희생자는 2만 명이 넘는다. 미국은 진상을 파악하고도 항상 그래왔듯이 자국의 외교적 이익을 위해 이 사건을 은폐했다. 대량학살이 있은 뒤로 40년 동안,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폴란드에서는 아무도 그 죽음들을 공론화할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희망이란 더러운 건물 외관을 숨기려고 급히 칠한 분홍색 페인트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절망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고 시인은 덧붙인다. 그는 "사이비 인생"을 좋아하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 군대의 무모한 전투요원처럼"('판 코기토의 괴물') 절망 곁에서, 정확히는 절망한 이들 곁에서 충실히 싸우겠다고 말한다. 그 깊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선 무엇이 인간을 이끌까? 시인은 대답한다. "내 안에는 생각하는 불꽃이 존재한다."('비문(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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