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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고양이 그리고 사람, 마라도의 갈등은 누구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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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교통 발달로 오랫동안 외부와 고립됐던 섬에 사람이 자주 드나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태계의 파괴 혹은 변화다. 사람을 통해 유입된 외래종이 '조그맣지만 독립된' 세계를 유지했던 섬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는 외부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동중국해 일본 오키나와의 한 섬인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 섬은 아마미 토끼나 야마네코 같은 보호종이 서식하는데, 섬 주민이 키우던 고양이가 야생화하면서 멸종 위기에 빠졌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600~1,200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는데, '야생화된 고양이'(feral cat)의 식이를 조사했더니 아마미 토끼 등을 포식하고 있었다. 또 다른 세계자연문화유산인 브라질의 페르난두 지 노로냐(Fernando de Noronha) 군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이 키우던 고양이가 야생으로 도망가면서 이 섬의 고유종인 175종의 척추동물에 영향을 미친 것이 확인됐다.
일본과 브라질 당국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귀중한 보호종을 구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신속한 고양이 제거에 돌입했을까.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틀렸다. 일본은 초기에는 적극 제거를 선택했지만 곧 수정했다. 2011년 야생 고양이 번식을 막기 위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밥 주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졌으나, 정책 효과가 의심됐다. 고양이 수가 줄긴 했지만 부족해진 식량 때문에 오히려 포식성이 높아져서 야생동물에게 해를 입힐 위험이 더 높아진 것. 결국 살처분보다 입양을 선호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주민 의사까지 반영, 이전보다 더 정교한 조치가 시행됐다. 관리 가능한 고양이는 등록해서 주인이 돌보도록 하고, 야생화한 고양이는 포획하여 살처분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포획된 고양이도 보호단체로 넘겨져 입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사람 위주의 직관적 해법 대신 과학적 분석을 통해 고양이를 일방적으로 제거하는 것보다 중성화를 병행하는 것이 고양이 수 조절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야생화한 고양이를 포획한 뒤 다시 길들일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살처분과 중성화 후 입양 방식을 병행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사실 아마미오시마와 페르난두 지 노로냐 사례는 생태계 교란 상황에서 인간이 성공적으로 대응한 몇 안되는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두 섬에서 벌어진 일을 올 봄 우리나라 제주 마라도의 그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지난 3월 제주세계유산본부와 문화재청은 제주 마라도에서 45마리의 섬 고양이를 포획하고 반출했다. 이 섬에 사는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를 마구 사냥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여론은 양분됐다. "뿔쇠오리를 멸종시키는 고양이를 모두 죽여야 한다"는 측과 "근거 없이 고양이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는 주장이 맞섰다. 새와 고양이 진영 모두 동물들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소동 끝에 포획·반출조치가 이뤄졌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진행 중이다. 마라도 주민들도 당국 조치를 반기지는 않는다.
새와 고양이, 사람 모두 만족하지 않는 건 뿔쇠오리를 지켜야 한다는 다급함이 앞서 과학적 분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라도에서 뿔쇠오리와 고양이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고양이만 없애면 문제가 해결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 마라도 뿔쇠오리의 이동 경로, 개체군 번식 특성 등에 대해 이뤄진 연구는 전무하다. 고양이가 뿔쇠오리 개체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단 한 편의 논문이 전부다. 이 논문은 (미발표 자료에 의거해) 200쌍 이상으로 추정되는 마라도 뿔쇠오리에 대해 고양이 성체 한 마리가 매년 1.2마리를 죽인다고 추정했다. 고양이를 중성화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20년 뒤에는 뿔쇠오리가 절멸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뿔쇠오리 생태에 영향을 주는 다른 환경요인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뿔쇠오리보다 먼저 마라도에 정착했다는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도 억울하다. 마라도 해녀들은 어망을 쏠아먹는 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전부터 고양이를 길렀다. 1975년 당시 11마리의 고양이가 살았다는 신문기사도 있다. 2021년 한 동물보호단체가 중성화 캠페인에 나설 때에는 120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지속적인 중성화로 지난 2월에는 약 60여 마리로 감소했고, 90% 이상이 중성화된 개체로 확인됐다.
일본과 브라질 사례처럼 한 지역에서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의심받더라도 고양이 개체군의 규모를 관리하려면, 인간과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 주인이 있는지, 실내에서만 사는지, 야외로 나가는지, 인간과의 관계(사회화된 정도) 여부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길고양이라면 입양이나 관리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야생화된 고양이는 사람의 접촉이나 접근이 어렵다. 이 구분에 따라 고양이를 관리하는 전략이 달라져야 하는데, 마라도 고양이에 대해서는 그런 사전 조치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고양이가 마라도 뿔쇠오리 개체군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없다. 고양이의 먹이인 쥐와 같은 설치류도 야생조류의 알을 노린다면, 고양이만 제거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길고양이와 야생화된 고양이의 수를 줄이는 구체적 방식도 사전에 정교하게 분석돼야 했다. 살처분을 선택한다면 덫을 놓거나 화살로 쏘아 잡거나 극약을 놓아 죽이는데 주민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고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우리 서해와 남해의 많은 섬들을 감안하면 마라도와 유사한 일은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획 없이 고양이를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양이는 물론이고 위협받는 종의 생태를 먼저 조사하고 목적이 명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양이는 물론 다른 동물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조사와 대책 마련 과정에서 여러 의견의 충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상황에 맞는 원칙을 세우고 의견을 수렴하고 인간과 동물 모두를 존중하는 방식을 도입하고자 애써야 한다.
마라도는 지금까지 인간과 여러 동물과 함께 살아온 역사를 담고 있고, 앞으로 또 새로운 동물이 머무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생태라는 가변적인 공간도, 인간이 생태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우리는 마라도를, 그리고 마라도 안의 인간과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관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야 하는가? 한 번의 격정을 겪었으니 이제 침착하게 이야기를 해 볼 시간이다.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수의 인문사회학)로 재직하고 있다. 같은 대학 학사ㆍ석사 과정을 마친 뒤 독일 루드비히 막시밀리앙 대학교(뮌헨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물 질병의 사회문화적 분석, 동물 질병과 의료에 대한 인간동물학적 접근, 수의 전문 직업성, 수의 윤리, 동물 정책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계와 관계, 코로나 시대의 인간과 동물(공저), 동물의 품안에서(공저)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역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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