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 발표 6일 전, 여당의 '숟가락 얹기'

세법 발표 6일 전, 여당의 '숟가락 얹기'

입력
2023.08.03 04:30
수정
2023.08.03 13:5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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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박대출(왼쪽)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 서재훈 기자

정부가 '2023년 세법개정안'을 공개하기 6일 전인 지난달 21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기획재정부가 참석한 세법개정안 실무 당정협의가 열렸다. 각 부처가 민감한 정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여당과 세부 내용을 조율하는 당정협의 취지가 무색하게도 이날 회의는 '연출'에 가까웠다.

국민의힘 정책위 발표 내용은 대략 이랬다. "국민의힘은 당정협의를 열고 해외로 진출했다가 국내로 복귀하는 유턴 기업의 소득세·법인세 감면 기간을 7년에서 10년으로 늘리기로 결정. 근로자의 출산·보육수당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한도도 월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확대."

얼핏 보면 여당이 주도적으로 유턴 기업 및 출산·보육수당 감세안을 설계하고 확정한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르다. 여당이 발표한 사안은 기재부가 당정협의 이틀 전 비보도를 전제로 언론에 요약 설명한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기재부가 이미 짜 놓은 감세안을 여당이 쏙 가져가 발표만 했다는 뜻이다.

정부 정책 발표에 숟가락을 얹는 여당 모습은 예산안 발표 때도 어김없이 재연된다. 지난해 8월 말 열렸던 예산안 당정협의 결과를 보면 '구직 청년에게 300만 원 도약 장려금 지급', '1,700만 명에게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지급' 등이 여당발로 선공개됐다.

정부 안팎에선 이런 당정협의를 여당 체면치레용이라고 본다. 정부가 국민에게 파급력이 큰 정책을 만들 때 여당도 관여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얘기다. 진보, 보수 정권 가리지 않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다. 업무 비효율도 뒤따른다. 관료들은 세법개정안, 예산안에서 전면에 내세울 '간판'은 아니면서도 언론이 비중 있게 다뤄 여당을 만족시킬 수 있는 '중량급 아이템'을 골라내느라 머리를 싸맨다.

그렇다고 기재부가 늘 당하는 쪽만은 아니다. 기재부가 경제 정책을 총괄한다는 명분 아래 각 부처가 설계한 정책을 취합해 발표할 때는 당정협의 때의 여당처럼 구는 경우도 없지 않다. 6월 21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에서 마련한 '순환경제 활성화를 통한 산업 신성장 전략' 중 일부를 소관 부처 장관 대신 공개한 식이다. 기재부를 향한 타 부처의 원성이 자자한 배경 중 하나다.

여당과 기재부는 정책 조율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산물이라고 반박할 듯싶다. 당과 정부, 기재부와 타 부처는 크게 보면 '원팀'인데 누가 발표하든 무슨 차이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애써 정책을 만들고 정작 공은 다른 이에게 넘겨준 실무진도 같은 생각일까. 실무진에 마음이 쓰이는 건 우리네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수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배 성과를 가로채는 직장 상사, 묵묵히 작업한 곰 같은 직원보다 여우처럼 일한 티를 낸 직원에게 돌아가는 주목 등등.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부처가 정책을 공표하기 전 당과의 소통을 강화해달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자칫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정책을 추진할 경우 당이 견제·견인하라는 차원이다. 여기에 주문 하나를 추가해본다. 여당도 매번 주요 정책의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 기재부도 마찬가지다. 딱 일한 만큼 조명받자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정치권, 관가에서 굳어져야 일상 속 얌체 같은 상사도, 여우형 직원도 그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박경담 기자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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