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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은 기본, 흉기 난동까지 부리는데… "녹음기 들고 싸우라고요?"

입력
2023.08.11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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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담당 공무원 보호 위한 관련법 개정 1년
민원인 위법 건수 줄었지만 악성 민원 여전
청경배치· 전담팀 신설 등 궁극적 해법 필요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달 12일 서울 동작구 상도1동 주민센터 민원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의 모습. 연합뉴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달 12일 서울 동작구 상도1동 주민센터 민원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경남 창원 진해구청에서 30대 공무원이 민원 상담 도중 4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건축물 해체 허가 관련 서류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말에 남성이 화를 내며 양손으로 목을 조른 것이다. 같은 달 18일 강원 원주시청에서도 공무원이 60대 남성에게 얼굴을 맞아 다쳤다. 가해 남성은 전날에도 “교도소에 있어 받지 못한 재난지원금을 달라”면서 민원실 가림막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렸다. 휴일인 지난 6월 11일엔 경북 상주시청 당직실 앞에서 60대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는 범행에 앞서 시청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을 개정해 행정기관 민원 처리 담당 공무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의무화한 지 1년이 지났다. 이후 지자체들은 실시간 촬영이 가능한 웨어러블캠(몸에 부착하는 카메라) 보급, 악성 민원 대응 훈련 등 보호책을 잇달아 수립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보호 조치나 대응 매뉴얼이 현실과 동떨어져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흉기를 든 사람하고 녹음기를 들고 싸우라는 것이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민원인 위법 행위 1년 새 1만 건 감소했지만…

10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민원처리법 개정안 시행에 이어 올해 4월 민원 처리 담당자의 신체ㆍ정신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호 조치 의무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동법 시행령 개정안이 적용됐다. 공무원 안전을 위한 폐쇄회로(CC)TV 등 설치와 안전요원 배치, 민원인의 폭언ㆍ폭행 등 발생 시 증거 수집을 위한 몸에 부착하는 웨어러블캠이나 녹음기 등 휴대용 영상ㆍ음성기록장비 운영 등이 보호 조치에 포함됐다.

민원인의 폭언·폭행 등 위법행위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민원인의 폭언·폭행 등 위법행위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시행령 개정 이후 지자체들은 앞다퉈 관련 장비를 도입했다. 악성 민원인이 민원 처리 담당자에게 폭언을 하거나 집기를 부수는 등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가정한 모의대응훈련을 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급증했다. 비상대응팀을 운영하거나(부산시), 민원실 창구 가림막을 아크릴에서 강화유리로 교체(울산 북구)한 곳도 있다. 전남도는 피해 직원에게 진료ㆍ약제비를 지원하고 있고, 인천 부평구는 민원실뿐 아니라 불법 주ㆍ정차 단속요원에게도 웨어러블캠을 지급했다. 행안부는 전국 지자체의 보호 조치 도입률이 8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2018년 3만4,484건, 2019년 3만8,054건, 2020년 4만6,079건, 2021년 5만1,883건으로 해마다 늘던 민원인 위법행위가 지난해 4만1,559건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9개월 새 담당 공무원 3명 극단 선택

그러나 발생 건수만 줄었을 뿐 흉기 난동 등의 심각한 위법 행위는 여전하다. 악성 민원인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을 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원주시와 경기 구리시, 고용노동부의 민원 담당자 3명이 극단 선택을 했다. 5년 차 미만 퇴직자도 2018년 5,670명, 2019년 6,664명, 2020년 9,258명, 2021년 1만693명, 지난해 1만3,321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선 청년 공무원의 93%가 악성 민원인에 대한 지자체 대응이 미흡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법까지 개정하고, 각종 보호책이 만들어졌는데 현장에선 여전히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전화ㆍ대면 폭언과 욕설, 성희롱, 폭행 등 사안별로 4, 5단계로 나눠져 있는 민원 대응 매뉴얼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언ㆍ욕설은 수시로 발생해 일일이 ‘중지 요청→녹음 고지→녹음→부서장 보고→고발’이라는 매뉴얼을 따르기가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공무원은 “녹음을 하면 폭언 등 수위가 더 심해질 확률이 높고 매번 부서장에게 보고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며 “갑자기 달려들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사회복지 업무 증가 △계도가 아닌 실적 위주의 과도한 단속과 과태료 부과 △95%에 이르는 대민 접촉 민원 업무 여성 공무원 배치 비중 △친절과 낮은 문턱 등만 강조하는 지자체장의 인식 등도 악성 민원인 문제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지자체, 예산 수반 해법엔 소극적"

궁극적인 해법으론 청원경찰 배치를 비롯해 악성 민원 신고 접수와 고소ㆍ고발 등 법적 대응을 맡아 하는 전담팀 신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돈’이다. 박중배 공무원노조 부위원장(대변인)은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이 수반된다는 이유로 소극적”이라며 “악성 민원이 공무원 한 사람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추가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복잡한 민원 업무가 많은 광역단체 민원실에는 청원경찰이나 안전요원을 배치한 곳이 적지 않지만 인원이 10명 안팎으로 적은 일부 동 주민센터 등의 경우 예산 문제로 인력 충원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런 곳들에 민원 안내인을 유단자나 경호 업무가 가능한 사람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권고하고, 악성 민원인 사고가 빈발한 곳을 선별해 인력을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청사에서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폭언과 함께 기물 파손 등 위협을 하는 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부천시 제공

지난달 28일 경기 부천시청사에서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폭언과 함께 기물 파손 등 위협을 하는 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부천시 제공


이환직 기자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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