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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반려견의 건강 지켜온 보호자의 비결, ‘세컨드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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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을 무렵. 서울 청담동 우리동생동물병원에서 근무하던 김민경 수의사에게 보호자 이은정 씨가 상담차 찾아왔습니다. 은정 씨가 데려온 반려견 베베(14∙몰티즈)는 다른 병원에서 담낭점액종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 이후 반복적인 설사 증세를 보이던 베베를 보며 은정 씨의 걱정은 나날이 커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리동생을 소개받고 방문하게 됐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수술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기 쉽지만, 김 수의사의 진단은 달랐습니다. 간담췌 분야가 전공인 김 수의사는 “수술엔 문제가 없었다”며 다른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김 수의사는 “가장 큰 문제는 식사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수의사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담낭점액종이라는 질병을 알아야 합니다. 담낭점액종은 나이가 들면서 담낭 내 점액이 쌓이거나 과도하게 분비돼 비대해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종양과 비슷하게 비대해지는 특징을 보여 ‘종’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실제 종양은 아닌 까닭에 진단된다 하더라도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파열될 정도로 담낭이 비대해졌다면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실시합니다. 담낭이 파열돼 담즙이 복부로 넘어가면 복막염과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어서입니다.
담낭은 지방을 소화시키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는 담즙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담낭을 제거하고 나면 담즙을 저장할 곳이 없어집니다. 즉, 소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담낭 제거술을 받은 뒤에는 반려견의 식사량을 줄이고, 영양 구성도 바꿔줘야 합니다.
김 수의사는 “베베의 경우 수술 이후 투약과 관련해서는 지도가 있었지만, 식이생활과 관련한 지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었다”며 “베베의 체중에 맞게 식사량을 조절하도록 조언한 뒤부터 설사가 멎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은정 씨 역시 “조금만 더 이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더 잘 돌봤을 것”이라며 “(김 수의사가) 베베의 적정 식사량을 그램 단위로 세세하게 알려준 덕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은정 씨는 어려서부터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2009년 1월, 베베를 만나게 됐습니다. 태어난 지 갓 3개월 된 베베를 처음 본 때를 은정 씨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잊기 어렵다고 합니다.
베베를 만나러 충청 지역까지 내려가면서 너무 설렜어요. 마침내 직접 만난 베베는 또랑또랑한 눈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베베를 돌봐주던 분들과 잠깐 얘기하던 도중에 호기심 많던 베베가 낙상하는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뭔 일이라도 났냐는 듯 천연덕스럽던 표정도 생생해요.
그렇게 은정 씨의 가족이 된 베베는 성견이 될 때까지 큰 건강 문제없이 잘 지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갈수록 등 부위 피부에 여드름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끔 산책하고 돌아오면 피가 나기도 했죠. 그때마다 병원에서 여드름을 짜면 고름이 나오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베베 나이가 7살이 될 무렵부터 1~2년 간격으로 이런 일이 반복돼 은정 씨는 조금씩 걱정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베베가 10살이 되었습니다. 은정 씨는 베베와 10년을 함께한 세월을 기념하려 케이크를 마련하고, 베베를 예쁘게 단장하고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 베베가 자주 가던 미용실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털 속에 숨어있던 다리 쪽에 커다란 혹이 발견된 겁니다. 부랴부랴 베베를 안고 동물병원에 간 은정 씨는 충격적인 진단을 접했습니다.
처음 간 병원에서 현미경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게 악성이다’라고 말했어요. 급하니까 수술을 빨리 해야 한다고요.
그러나 은정 씨는 뭔가 미심쩍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큰 문제일수록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며 주변을 통해 다른 병원을 알아봤습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단순 염증. 항생제 처방을 받은 지 오래지 않아 베베 다리에 붙은 혹은 사라졌습니다.
병원을 오가면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어요. ‘부디 아무 일 없도록 해달라’고요. 그리고 그 기도가 통한 것 같아서 기뻤죠.
‘기도가 통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여러 전문가들의 ‘세컨드 오피니언’을 듣고자 하는 은정 씨의 성격도 베베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주효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베베의 담낭점액종을 발견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021년 11월, 베베는 새벽부터 몸을 부르르 떨며 개구호흡을 했다고 합니다.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을 방문했지만,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2시간 사이에 몇 군데의 병원을 둘러봤지만, 병원마다 판단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다’는 판정, ‘신장이 문제’라는 진단을 들을 때마다 은정 씨는 혼란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마지막 병원에서 한 수의사가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베베는 담낭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진단한 수의사는 베베의 비대해진 담낭을 보여주는 초음파 사진과 간 수치 결과를 보여주며 담낭 절제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받은 베베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병원을 방문하는 은정 씨가 어쩌면 수의사를 믿지 못하는 보호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은정 씨의 모습과는 매우 다릅니다. 김민경 수의사는 “베베 보호자님은 수의사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보호자”라고 강조합니다. 한번 은정 씨에게 근거를 제대로 갖춰 설명해 믿음을 얻으면, 조언을 성실히 따른다는 뜻입니다.
김 수의사는 담낭 제거술을 받게 되면 소화기계에 큰 변화가 온다고 설명합니다. 담낭 자체가 없는 만큼 담즙은 담관에서만 저장되게 되는데, 이 담관이 수축될수록 담즙이 부족하게 됩니다. 문제는, 한꺼번에 음식을 많이 먹어서 장이 팽창하면 담관이 수축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김 수의사는 담관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소량의 식사를 자주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보호자들에게 강조합니다.
은정 씨는 이 조언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베베의 건강 지표에도 꾸준히 나타난다는 게 김 수의사의 설명입니다. 그는 “사실 식사량 조절은 입원한 병동에서 수의사가 동물을 돌볼 때도 쉽지 않다”며 “그걸 해낸 것만으로도 보호자분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지방 사료를 급여하다 보니 베베가 집안 곳곳을 뒤지며 다른 음식을 찾아 은정 씨 몰래 먹다가 병원 신세를 또 진 일도 있었죠.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수의사 조언을 잘 지켜낸 은정 씨의 노력이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겁니다.
다가오는 가을에 15세가 되는 베베는 눈에 다래끼도 생겼습니다. 다만 고령의 나이여서 마취를 통해 수술하기에는 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항생제 성분이 담긴 점안액을 투여받는다고 하네요. 그렇다 해도 은정 씨를 향한 김 수의사의 믿음은 여전합니다. 단순히 베베가 15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력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반려동물을 향한 은정 씨의 진심을 느껴서입니다.
건강 때문에 저지방 사료를 먹고 있는데, 그게 베베에겐 많이 힘들 거예요. 그런 만큼 얘가 좋아하는 걸 더 해주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 산책 시간은 짧게 횟수는 자주 해야 하는데, 그만큼 다양한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요.
저희 부모님은 강아지 키우는 걸 원치 않으셨었어요. 그런데 베베가 오고 나서 부모님이 저보다도 더 베베를 좋아하세요. 그렇게 부모님 마음을 바꿔준 베베를 위해서라도 저는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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