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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참사, 많음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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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을 흐르는 미호천 제방이 무너지면서 지하차도에 물이 차 14명이 사망한 참사가 일어났다. 임시제방 보수공사 감리단장과 금강홍수통제소는 사고 발생 2시간 전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제방이 무너질 것 같다'고 알렸다. 지하차도 출입을 통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관련 기관들은 무엇을 했을까. 행복청은 흥덕구에, 흥덕구는 청주시에 연락했다. 도로통제권이 있는 충북도에는 전달이 안 되었고, 112신고를 받은 경찰은 엉뚱한 곳으로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0월 핼러윈 참사의 데자뷔다. 현장에서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소리치는데 여러 기관은 팔짱 끼고 바라만 봤다. 어떤 사건을 목격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 때 오히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방관자 효과'를 여기서 본다. 제방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관은 많았지만 누구도 책임지고 나서지 않았다.
흔히 규제가 효과를 내지 못하면 다른 규제를 추가한다. 더 강한 규제로, 더 많은 책임자를 끌어들인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발주자에게 공사 계획단계에서 위험 요인을 감안한 기본안전대장을 작성하도록 의무 지우는데, 설계도 이뤄지기 전에 어떻게 위험 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인에게 수급인 종사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한다. 사업주로서 시공자가 고용주로서 수급인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발주자를 도급인으로 또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더 조급해진다. 2019년 서울 잠원동에서 건물철거 중 붕괴사고가 나자 건축물관리법을 만들어 건축물을 해체하려면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지자체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2022년 광주 학동에서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해체계획서를 제출하고 승인받았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영국을 안전 일등국으로 만든 토대가 된 로벤스 보고서는 얽히고설킨 법령과 여기저기 분산된 감독기관 문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다. 1970년 당시 영국의 안전보건 법령은 9개의 법률과 500개에 달하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방대했다. 이를 감독하는 기관도 5개 부처의 9개 기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고서는 방대한 법령과 분산된 감독기관은 중복과 사각지대를 가져온다며 하나로 통일할 것을 권고했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청으로 실현되었다.
방관자 효과를 막는 방법은 여럿 중 하나를 콕 집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여러 기관에 분산된 재난방지 책임을 특정 기관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송 지하차도의 경우 청주시를 '지휘통제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 임무와 관련해서는 청주시가 구, 경찰서, 소방서와 도로 통제 기관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이들 기관이 보유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제 없는 많음은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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