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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신상공개와 신상털기의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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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자녀의 범죄에 부모가 ‘도의적 책임’을 자임하며 ‘사죄’하는 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경우 드물지 않다. 그건 일종의 정치행위지만, 넓게 보면 관습적 연좌의 한 예다.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가족주의 정서상 법적 주체인 개인의 책임을 가족 구성원에게 묻는 걸 당연시한 나머지 ‘도의적’ 책임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을 경멸하기도 한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이 미국 국적 한국계 이민 1.5세대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주미 한국 총영사관이 공식 사죄한 일까지 있었다.
연좌의 그물은 흉악 범죄자의 신상공개 요구나 SNS 등을 통한 사적인 ‘신상 털기’와도 은밀히 이어져 있다. 피의자나 범인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여론에는 동기나 취지와 별개로,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이 공개됨으로써 피의자 가족과 친인척 등이 겪을 수 있는 가시적-비가시적 연좌적 피해에 대한 배려가 배제돼 있기 쉽다. 오히려 그 정도는 달게 받는 게 도리라는 무의식적 정서가 깔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피의자의 미성년 자녀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할 수 있고, 반려자는 직장 생활을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족 전체의 생계도 위협당한다. 형사법의 하나인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 2항은 범행 수법과 피해 규모,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범죄 방지 예방에 필요할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근대-권위주의 시대의 연좌제가 권력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법적-제도적으로 지탱됐다면, 오늘날의 이른바 신연좌제는 문화와 관습, 인권을 넘어서는 정서적 응징의 충동으로 지탱되고 합리화된다. 신연좌제는 희생자만 있을 뿐 뚜렷한 가해자가 없어 전근대의 연좌제보다 은밀하고 그래서 더 비열해질 수 있다.
연좌제는 집단주의-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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