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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전집을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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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문학관’은 경기 양평군에 있다. 황순원 선생이 양평에서 출생했나? 아니다. 그는 이북(평안남도 대동군) 출신이다. 그럼, 왜? 그의 소설 ‘소나기’의 배경이 바로 양평이다. 소나기에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란 구절이 있다. 오랫동안 국어 교과서에 실려서겠지만, 그만큼 그의 소설 중에서 소나기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소나기를 그의 대표작으로 보긴 어렵다. 빼어나고 아름다운 작품이기는 하나 원고지 40매 분량의 단편이고(보통 공모전에서 단편소설의 기준이 원고지 70~100매 정도이니 엄밀히 말하면 단편에도 못 미친다), 그도 생전에 소나기를 대표작으로 꼽은 바 없으며 그다지 특별한 애정을 소나기에 표한 적도 없는 듯하다. 오히려 황순원 소설의 본령(本領)은 40대 이후 작가로서 원숙한 시기에 쓴 일련의 장편에 있다. 황순원 전집을 처음 읽었을 때도 교과서에 실리고 잘 알려진 단편들보다는 비교적 덜 알려진 장편들이 더 인상 깊었다.
황순원 전집을 처음 읽은 것은 대입 학력고사(그때는 수능이 아닌 학력고사였다)를 치른 뒤 합격자 발표가 나고서였다. 대학 입학 때까지 공백기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내놓은 답안 중 하나가 황순원 전집 읽기였다. 문학적 지향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입시 공부에 매달리다 갑자기 할 일이 사라지자 뭔가 몰입할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소나기를 감명 깊게 읽은 것도 그 선택에 한몫한 것 같고. 황순원 전집 읽기는 입학 후에도 계속됐는데, 지방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서울의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며 느끼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잊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당연히 오래가지는 못했다. 서서히 대학 생활에 적응하면서 황순원 전집은 내 손에서 멀어져 갔다. 1980년대 말 대학가 분위기에서 황순원 소설은 왠지 고색창연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나 다시 황순원 전집을 읽게 된 것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란 책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서울의 출판계에서 일하다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이사한 필자가 세계 문학 전집을 읽어가며 그 감상을 기록한 것인데, 이 책을 보자 예전에 읽다 만 황순원 전집이 떠올랐다.
당시 12권의 황순원 전집 중 제8권이었던 장편소설 ‘일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일월에서 시작했다. 소설적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간결한 문체도 좋았지만, 읽어 가는 과정에서 10대 때의 독법과 30여 년 후의 독법이 자연스레 비교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전에 읽을 때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가 나중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몇몇 부분들이 있어 좋았다.
“요즘 누가 글을 읽냐? 유튜브 동영상 보지” 하는 말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문학 전집을 읽는다는 건 말 그대로 고색창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년 전 서울 광화문 거리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에서 보았던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 “사람이 온다는 건 /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처럼 개인의 문학 전집이든 세계 문학 전집이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한 작가의 일생이 다가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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