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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행동에 공황장애까지"… 대구 가스라이팅 피해자 고통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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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짐 싸들고 이동 중이었는데 갑자기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바로 여행 가방 열어서 길바닥에 다 쏟아 붓고 그 안에 숨었어요.”
‘대구 가스라이팅’ 피해자 A씨가 지난 25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옛 직장 동료 B(41)씨 부부의 심리적 지배 속에 3년간 낮에는 그들의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2,500여 차례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폭행 등 가혹행위도 다반사였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 반년이 넘었고, 가해자들에 대해선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처벌 여부나 처벌 수위와는 별개로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A씨는 “가스라이팅을 자각하고부터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중”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지금은 전문보호기관에서 생활 중이라는 A씨는 “스스로도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매일같이 당시 일이 떠올라 분노가 가라앉질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불면증 등 각종 정신질환 진단도 받았다.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고 있지만 혼자서 외출은 꿈도 못 꾼다. A씨는 “지인이 신고하자고 경찰서에 끌고 가다시피 할 때도 정작 나는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깨닫지 못했다”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뉴스에서나 보던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고 털어놨다.
몸은 벗어났지만 악몽은 여전하다. 무의식중에 봉인해 두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면서 수시로 가슴을 옥좼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숨이 막히고, 아무 데서나 통제력을 잃고 소리를 질러댔다. 학원 강사로 일할 만큼 사회적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벅찼다. 실제 인터뷰 중에도 A씨는 이따금씩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처럼 “사람들 많은 데 못 가요. 공황장애 나타나요. 소리 질러요. 혼자 외출 안 돼요”라는 식으로 단문을 줄줄이 나열하거나, 질문과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놨다. 아기마냥 “하면 안 돼. 그거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요” 등 같은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했다. 말투나 발음 역시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부정확하고 어눌했다.
그렇다고 A씨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특히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성매매조차 피해자가 좋아서 스스로 한 거라고 주장하는 등 혐의를 부인하는 걸 볼 때면 정신을 더 바짝 차리게 된다.
B씨 부부 측 변호인은 지난 21일 결심공판 당시 최후변론에서 “B씨는 피해자에게 성매매를 중단하라 했지만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고, 오랜 기간 이어진 것으로 볼 때 강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는 논리를 폈다. 이어 “피고인들이 사치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이들에겐 대출금이 많다”며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설명도 곁들였다. B씨 부부 역시 최후진술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가겠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모든 행위가 피해자 입장에선 처벌을 피하거나 형량을 낮추기 위한 ‘꼼수’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A씨는 “지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응당한 죗값을 치르기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성매매 알선과 특수중감금, 폭행 등 혐의로 B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또 B씨의 남편 C(41)씨와 피해자 A씨의 남편 D(37)씨에겐 각각 징역 10년, D씨의 직장 후배인 E(36)씨에겐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B씨 부부는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A씨에게 빚이 있다고 기망하거나 폭행해 2,500회가량 성매매를 강요하고 5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의 후배인 D씨는 A씨와 결혼해 사실상 감시자 역할을 하며 범행을 도왔다. E씨는 도망친 A씨를 붙잡는 데 가담했다. 선고 공판은 9월 1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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