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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후 행복 1순위를 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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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6년 전이었으니, 그사이 늘어난 눈가 주름과 후덕해진 턱살을 마주 보면서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다”며 깔깔댔다. 꿈 많던 여고생이 이제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했고 결혼 후 이사를 해 사는 지역마저 달라진 지 오래인지라, 그동안 우리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소식을 전하며 지냈다. 아이들 키우랴 시어른 모시랴, 직장 생활하는 워킹맘 신세에 ‘보고 싶다’라는 이유만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 채 지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순수하게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리던 젊은 시절에는 자연스레 개인으로서의 ‘나’보다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의 역할과 정체성에 더 메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사는 동안 청춘이 다 지난 듯해 속상하긴 하지만, 또 한편 그러한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이 더없이 좋다. 이제 시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기도 하고 아이들이 다 커서 심리적으로 독립해서인지, 더 이상 개인으로서의 ‘나’의 선택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이 든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그동안 소식만 간간이 주고받을 뿐 선뜻 만나기 어려웠던 어릴 적 친구들과 대학 동창들을 만나는 일이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다. 여러 역할에 메여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잘 챙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 동안 곁에 머물러 준 그들이 있어 감사하다. 서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 묘하게 위안이 되고 힘이 난다.
최근 몇 년간 연구하고 있는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우정(友情)이다. 고등학생들이 경험한 ‘우정’에 관해 조사 분석한 결과, ‘얼굴만 봐도 행복하고, 만나자마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사이’(행복의 원천),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고, 목욕탕도 함께 갈 수 있는 사이’(격의 없는 사이), ‘옳지 않은 길을 가면 때려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주고 싶고, 성공할 수 있게 서로 도와주는 사이’(돌봄과 지원),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서로 힘들고 지칠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사이’(공감과 유대)가 특징적인 개념으로 드러났다.
최근 성인의 우정에 관한 연구에서는 좀 더 진일보한 특징들이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정이란 ‘못난 모습도 보일 수 있는 허물없는 사이’, ‘믿고 의지하며 깊이 이해하는 사이’, ‘서로 돕고 힘이 되어주는 사이’, ‘살아가며 오래 함께하고픈 사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상호 간의 ‘깊은 이해와 신뢰’ 그리고 ‘평생 이어지는 관계’라는 특징이 청소년기와 구분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사람 사이의 ‘불신’과 ‘오해’로 불거진 사건 사고가 날마다 뉴스에 보도되는 오늘날, 청소년기에만 우정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른의 삶에서도 친구가 중요하다. 그러니 가끔 멈추어 서서, 멀리 있는 오랜 친구의 안부를 묻자. 세상이 내게 어떤 역할도 부여하지 않았던, 무엇도 되지 못한 부족하고 못난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던 그가 중년기 이후의 삶에서도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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