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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 없는 롯데 벨루가 '벨라' 생크추어리행… 플랜B는 없나요

입력
2023.07.27 09: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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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하려던 해외 생크추어리들 설립 지연
해외에만 의존 말고 적극 대안 모색할 때
생크추어리 고집 말고 동물 복지 고민해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벨라가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벨라가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흰고래) '벨라'야생적응장(생크추어리) 이송이 기약 없이 늦어지면서 이제라도 플랜B를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와 동물단체들은 해외 생크추어리만 고수하지 말고 4년째 홀로 살고 있는 벨라의 사육 환경개선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6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따르면 아쿠아리움은 최근 우선협상대상자인 아이슬란드 생크추어리 운영사(멀린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자체 벨루가의 건강과 환경조성 문제로 벨라의 이송이 순연될 수밖에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롯데월드는 당초 벨라를 지난해 말까지 해외 생크추어리로 보낸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선 협상이 진행됐던 아이슬란드 벨루가 생크추어리의 내부 사정으로 이송 절차를 진행시키지 못했다. 이에 지난해 중순, 연말까지 최종 이송지라도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동물단체들은 벨라를 조속히 방류해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롯데월드가 벨라의 생크추어리 이송을 위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문제는 이송을 검토하던 해외 생크추어리들이 내부 사정이나 설립 지연 등으로 당장 벨라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해외 생크추어리들, 내부사정∙설립 지연 등으로 차질

아이슬란드 헤이마이섬 벨루가 생크추어리에 있는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가 리틀 그레이의 건강 문제로 실내 공간으로 이동해 지내고 있다. 시라이프트러스트 SNS 캡처

아이슬란드 헤이마이섬 벨루가 생크추어리에 있는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가 리틀 그레이의 건강 문제로 실내 공간으로 이동해 지내고 있다. 시라이프트러스트 SNS 캡처

1순위로 거론되던 아이슬란드 생크추어리부터 차질이 생겼다.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해양생물 보호단체 라이프트러스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단체는 지난 4월 헤이마이섬 클레츠비크만 생크추어리에 있던 벨루가 리틀 그레이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것을 확인하고,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를 실내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이 때문에 벨라를 받을 공간이나 여력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벨라를 이송할 또 다른 후보지로 꼽혔던 캐나다와 노르웨이 생크추어리 역시 계획보다 완공이 지연되고 있다. 롯데월드 측은 "방류기술위원회에서 두 지역을 검토한 결과 현재 벨루가가 지낼 수 있는 시설조차 없음을 확인했다"며 "생크추어리 조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각 정부의 허가도 이뤄지지 않아 완공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가 캐나다 남동부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벨루가∙범고래 생크추어리를 짓고 있는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와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 피요르드 해안(빙하로 인해 침식된 해안 지형)에 노르웨이 고래 보호구역을 짓는 원웨일에 확인한 결과, 실제 이들이 밝혔던 완공 목표 시점보다 지연되고 있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지어질 고래를 위한 생크추어리. 넓이가 약 40만5,000m²에 달한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지어질 고래를 위한 생크추어리. 넓이가 약 40만5,000m²에 달한다.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로리 마리노 고래 생크추어리 프로젝트 대표는 "현재 설립 허가를 위한 수질과 토양 환경 분석을 마쳤다"며 "이 결과를 토대로 정부로부터의 허가 및 부지 인수를 진행하고, 수의사와 동물 관리 인력을 위한 공간 등을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리노 대표는 "내년에 첫 고래가 생크추어리에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벨라와 아쿠아플라넷여수의 루비(홀로 살고 있는 또 다른 벨루가)가 올 수 있을지 여전히 관심이 많다"고 덧붙였다.

원웨일 역시 설립을 위한 첫 삽을 뜨지 못했다. 레지나 크로스비 원웨일 대표는 "기금을 모으고 있고, 첫 번째 상근 직원을 고용했다"며 "현재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로스비 대표는 "현재 (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에 머물고 있는 벨루가) 발디미르를 제외한 보호시설에 올 다른 고래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고래 확보는 보호시설 설립과 허가를 받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갈 곳을 찾고 있는) 벨라에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벨루가 '루비'와의 합사 등 플랜B 검토해야

레지나 크로스비(왼쪽) 원웨일 대표가 지난해 노르웨이 북동부 핀마르크주 항구도시 함메르페스트에서 벨루가 '발디미르'를 쓰다듬고 있다. 레지나 크로스비 대표 제공

레지나 크로스비(왼쪽) 원웨일 대표가 지난해 노르웨이 북동부 핀마르크주 항구도시 함메르페스트에서 벨루가 '발디미르'를 쓰다듬고 있다. 레지나 크로스비 대표 제공

해외 생크추어리 설립 지연이 어떤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생크추어리 이송을 위해서는 벨라가 이송에 적합한 상태인지, 해당 생크추어리의 조건에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국내 기업이 보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런 점을 감안해서 한국 기업들은 지금부터 해당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면서 준비를 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또 당장 해외 생크추어리 이송이 결정된다 해도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현 사육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영란 비영리 해양보전단체 플랜오션 대표(해양동물 전문 수의사)는 "벨라뿐 아니라 아쿠아플라넷여수에도 루비가 혼자 살고 있다"며 "둘 다 암컷인 만큼 수컷보다 합사의 성공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도 "벨루가가 사회적 동물임을 감안하면, 이 둘을 함께 지내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롯데월드는 "우선협상대상자인 멀린엔터테인먼트와 순연되는 시기를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해양수산부의 '돌고래 바다 쉼터' 추진 계획 등을 주시하며 국내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생크추어리만이 답인지 논의해야 할 때

아쿠아플라넷여수에서 다른 수컷들의 공격으로 좁은 뒤편 수조에서 지내던 루비. 동물자유연대 제공

아쿠아플라넷여수에서 다른 수컷들의 공격으로 좁은 뒤편 수조에서 지내던 루비. 동물자유연대 제공

벨라와 루비를 위해 국내외 생크추어리 이송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해외 생크추어리에만 기댈 수도 없는 데다 국내 돌고래 생크추어리(바다쉼터) 설립 자체도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태풍 등의 영향이 있는 국내에 바다쉼터 설립이 적절한지는 최근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더욱이 북극해에 서식하는 벨루가의 경우 우리나라 바다쉼터의 수심과 수온에 적응하는 게 녹록지 않다. 바다쉼터에 대한 정확한 역할과 이해 없이 추진한다면 '거대한 수족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현재 경북 영덕군 대진1리항이 바다쉼터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는 상태다. 해수부는 전체 사업비 180억 원 가운데 12억 원을 내년 예산으로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수부가 바다쉼터 설립을 위해 신청한 예산이 승인된 적은 없다. 해수부 관계자는 "기존 예산도 삭감하는 상황이라 내년에 신규 예산이 책정되기 쉽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는 "생크추어리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부터 필요해 보인다"며 "고래 복지를 위해서는 수질 관리가 되는 공간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면서 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 비봉이를 방류한 사례를 봐도 생명을 담보로 한 준비 없는 행동은 반생명적이며, 개체의 복지에도 반한다"며 "생크추어리 이송이 어렵다면 적절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해외에도 고래 생크추어리는 걸음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돌핀프로젝트가 현지 동물단체 등과 운영하는 큰돌고래 생크추어리의 모습. 돌핀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돌핀프로젝트가 현지 동물단체 등과 운영하는 큰돌고래 생크추어리의 모습. 돌핀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해외에서 현재 고래류를 위해 운영되는 생크추어리는 2곳 정도로 알려져 있다.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아이슬란드에서 운영하는 벨루가 생크추어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돌핀프로젝트가 현지 동물단체 등과 운영하는 큰돌고래 생크추어다.

고래류를 위한 생크추어리 건립이 쉬운 건 아니다. 캐나다와 노르웨이뿐 아니라 미국 메릴랜드주(洲)의 볼티모어에 있는 내셔널 아쿠아리움도 플로리다에 생크추어리를 만들려다 다시 장소를 물색하는 등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셔널 아쿠아리움은 앞서 2016년 6마리의 큰돌고래를 위한 생크추어리를 2020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장소 선정부터 철저하게 준비했음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셔널 아쿠아리움은 장소 선정을 위해 4개국 40개 이상의 장소를 방문했다. 캐나다에 생크추어리를 짓고 있는 고래 생크추어리 역시 전 세계 130곳의 후보지를 조사한 끝에 캐나다 남동부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을, 그리스에서 생크추어리를 준비 중인 에게해 해양생물 생크추어리(AMLS)도 6년간의 철저한 조사 끝에 립시섬의 브루올리아만을 선정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내셔널 아쿠아리움에 살고 있는 큰돌고래들. 내셔널 아쿠아리움은 2016년 수족관 돌고래들을 위한 생크추어리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답보상태다. 내셔널 아쿠아리움 홈페이지 캡처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내셔널 아쿠아리움에 살고 있는 큰돌고래들. 내셔널 아쿠아리움은 2016년 수족관 돌고래들을 위한 생크추어리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답보상태다. 내셔널 아쿠아리움 홈페이지 캡처

고래류를 위한 생크추어리 건립이 처음 시도되는 것이니만큼 고래 생크추어리프로젝트와 멀린 엔터테인먼트, 내셔널 아쿠아리움은 최근 무늬만 생크추어리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한 생크추어리 기준을 마련해 최근 발표했다. 이들은 ①훈련된 공연에 참여 여부 ②돌고래 수영 프로그램 등 동물과 접촉 여부 ③번식 가능 여부 ④동물복지 이외 다른 우선순위 여부를 묻고, 이에 해당한다면 생크추어리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최대한 자연 고래 서식지와 유사해야 하므로 넓은 해안 지역에 위치해야 하며 △방문객이나 연구자, 기증자가 아닌 고래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원칙이 있어야 하며 △수족관이 하던 대로 고래류의 건강과 안전에 필수적인 인간의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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