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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칼부림, ‘흔한 범죄’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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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편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주인공은 시한부 환자다. 그는 병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맞닥뜨린 이른바 묻지마 살인범에게 목숨을 빼앗긴다. 갑작스러운 결말은 언제 어디서든 ‘도리마(通り魔)’에 죽을 수 있다는 일본인의 공포를 드러낸다. 직역하면 ‘길거리 악마’란 뜻인 도리마는 거리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살인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특유의 범죄로 여겨지는 도리마 사건은 1980~1990년대에도 발생했다. 2000년 이후 발생한 주요 도리마 사건의 범인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20~40대 남성이란 점에서 이전과 구별된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장기 경제 침체를 겪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비정규직 증가로 불평등이 확대돼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2008년 7명을 숨지게 한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 사건’의 범인으로 지난해 사형이 집행된 가토 도모히로가 대표적이다. 2021년 8월과 11월 발생한 전철 내 칼부림 사건의 범인도 비정규직을 전전한 20~30대 무직 남성의 소행이었다. 범행 양상은 다르지만 지난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총격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도 비슷한 범죄자 유형으로 분류된다.
일본의 범죄 심리학자 기류 마사유키 도요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일본의 무차별 살상 범죄는 사회적 요인이 크다”며 “한국에는 별로 없지만 앞으로 10년 후엔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보니 벌써 징후적 사건이 발생한 것 같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경기는 침체하고 있다.
묻지마 칼부림이 일본처럼 흔한 범죄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범인 개인에게 잠깐 분노한 후 잊어선 안 된다. 이런 범죄를 낳는 사회 경제적 토양이 형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불안정 고용과 불평등 확산을 막고,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고립되지 않도록 사람 사이의 연결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 실업급여를 깎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최소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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