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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족들 "사법은 죽었고,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이었다"

입력
2023.07.25 19: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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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이상민 탄핵 기각에 분노·슬픔 표출
"모든 기관이 159명 외면... 면죄부 준 것"
참사 특별법 제정에 모든 역량 모으기로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참담하고 아프다.”

2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선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헌재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끝내 기각하자, 유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정부와 헌재를 싸잡아 비난하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기로 결의를 다졌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탄핵심판 선고 직후 연 기자회견 분위기는 예상대로 싹 가라앉았다. 유족 20여 명은 눈물을 훔치거나, ‘이상민 탄핵’이 적힌 피켓을 든 채 눈을 꽉 감았다. 희생자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은 “너무 참담하고 아프다”며 울먹였다. 그는 “대한민국 모든 행정기관이 159명의 국민을 외면했다”면서 “행정부 수장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장들이 면죄부를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도 “사법은 죽었고, 헌재는 다분히 정부에 대해 정치적이었다”며 “앞으로 국민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결국 ‘윗선’ 누구도 참사에 책임을 지지 않을 가능성에 분개했다. 이 직무대행은 “명확히 정부의 부재가 발견되고 나타났는데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헌재에 의해 부정됐고, 헌재는 (우리 사회가) 무법 상태임을 선언했다”고 맹공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기각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도중 보수단체 회원이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로 유족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자 차량으로 달려들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태원 참사 유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기각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도중 보수단체 회원이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로 유족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자 차량으로 달려들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제 유족들의 유일한 희망은 특별법 제정이다. 10ㆍ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은 윤복남 변호사는 “헌재가 책임을 묻지 않은 이상 특별법이 더 중요해졌다”면서 특별법에 의한 특별조사기구를 통해 이 장관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이 직무대행은 특별법 통과 시점을 내년 1월로 예상하기도 했다. 유족과 지원단체는 국회 농성도 계속 진행하며 특별법 제정을 압박할 계획이다.

이날 헌재 앞에선 유족 측과 보수진영이 충돌해 회견이 20분 정도 중단되는 사태도 빚었다. 보수 유튜버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태원 참사는 북한 소행”이라고 소리치자 분노를 참지 못한 일부 유족이 뛰쳐나와 맞섰다. 이 과정에서 유족 1명이 실신하는 등 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서울광장 분향소 문제도 길어질 듯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야권 인사들이 6월 28일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열린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야권 인사들이 6월 28일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열린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후 참배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가 철거를 재촉하는 서울광장 앞 분향소 문제도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족들은 올해 2월 4일 참사 발생 100일을 맞아 이곳에 분향소를 설치했지만, 서울시는 변상금을 부과하는 등 ‘불법 시설물’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는 분향소를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나 광장 인근 건물 안으로 옮길 것을 권했으나 유족들은 건물 내부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에 부적절하다며 거부했다.

이 직무대행은 “당분간 분향소를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참사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충분한 추모가 이뤄졌을 때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겠다는 입장이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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