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산만한 네 살 아이, 나처럼 ADHD 대물림될까봐 두려워요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counseling) 또는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저는 네 살 아이를 둔 가장이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생활기록부엔 '주의가 산만하고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함'이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어요. 당시엔 그게 ADHD 때문이란 걸 몰랐어요. 뭔가를 자주 잊어버리고,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성향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 성인이 돼서야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약을 복용하며 집중력을 바로잡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문제는 네 살 아들에게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언어가 월등하게 빠른 편이고, 성격도 활발합니다. 그런데 집중력과 사회성이 눈에 띄게 부족합니다. 이를테면 놀이 시간에 친구들의 장난감을 자주 망가뜨린다거나 본인의 물건에 집착이 심합니다. 놀이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어른이 호명해도 잘 쳐다보지 않아요. 대화를 할 때도 눈을 피하며 말합니다. 육아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결과 사회성이 낮고 소근육 발달이 더딘 반면 공격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았어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ADHD 증상의 대물림이 아닐까 불안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저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장난기가 많고, 충동적 성향이 강해요. 그래서 유년기에는 장난이 심했고, 친구들과 자주 싸웠습니다. 불장난이나 물건을 훔치는 등 자극적 행동도 즐겨했어요. 지금도 게임을 비롯해 자극적인 것들을 좋아하고 자주 욱하는 성격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모습을 숨기게 됐어요.
아이를 낳으면 화목한 가정에서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불안해요. 배우자와의 사이도 나빠지고 있어요. 자녀 양육과 교육 문제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만 간극이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아내는 원래부터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데 서툰 편입니다. ADHD 성향이 강한 아빠와 아이, 표현이 부족하고 회피적 성향이 강한 엄마의 조합이다 보니 가정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냉랭하고, 부부 대화도 자주 단절되다 보니 결국 자연스레 아이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가고 있어요.
아이에게 ADHD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집니다. 이 불안감을 누르고 주양육자인 아내의 방식을 인정하고 두고 봐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꾸준한 교육과 훈계를 통해 소리를 지르거나 떼를 쓰는 등 아이의 충동적 행동이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우자가 저의 양육 방식을 따르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요. 아이에게 ADHD를 물려주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요.
김영훈(가명·40·회사원)
영훈씨, ADHD 증상으로 괴로웠던 기억을 딛고 그것을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을 먼저 칭찬하고 싶습니다. 과거 내가 겪은 증상을 떠올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당신이 내면의 힘을 갖췄다는 방증이겠지요.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녀에게서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불안했을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부분 양육자는 아이를 키울 때 자신의 성장 과정을 떠올립니다. 사연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영훈씨는 성장 과정에서 ADHD 증상으로 상당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여요. ADHD는 주의력이나 자기 조절 능력의 발달이 비교적 느린 꽤 흔한 질환입니다. 보통은 ADHD 증상을 보여도 크면 나아질 것이란 생각에 지켜보다가, 학업이나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보이면 진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이 시기에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시 증상으로 인해 학교 및 직장 생활 적응이나 대인관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돼 자존감이 떨어지고 피해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영훈씨의 경우 ADHD를 뒤늦게 발견해 양육자와 상호작용, 대인관계, 잠재적 능력 발휘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추측건대 영훈씨가 ADHD 성향의 행동을 반복할 때 주변으로부터 인정보다는 질타가 따라왔을 거예요. 그 부분이 여전히 매우 큰 상처로 남아있을 겁니다. 성인이 돼서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억눌러야 했던 상처가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ADHD 진단과 치료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살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을 ADHD 증상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때로는 과도할 만큼 몰두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영훈씨는 자신이 겪은 경험과 질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놓치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 우려스러운 점은 당신이 자녀에게 그 기억과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 너무 몰두돼 섣불리 아이를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당신은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 좋은 아빠입니다. 당신이 겪은 고통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노력 자체는 훌륭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통제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뇌에서 자기 조절 센터의 발달이 조금 더딘 ADHD는 관계의 어려움이나 학습 능력 저하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오래 집중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는 학령기가 돼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죠. 학령기 이전 유아들은 일반적으로 오래 집중하는 게 어렵고 산만하고, 충동성 및 과잉행동을 보입니다. 세 돌 정도 되는 네 살 유아가 충동 조절이 미숙해 어른들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떼를 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에요. 어려서부터 아이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은 좋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다고 해서 미리부터 과도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보다 지금은 영훈씨가 ADHD 증상을 겪으면서 받은 영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상으로 인해 겪었던 상호작용의 모습, 문제 해결방식, 현재의 삶, 아이와의 관계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겪은 감정적인 고통을 수용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사람에게 자기 조절 능력은 가장 중요한 점이야’라는 가치관이 생겼고 그게 지금도 영훈씨 행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도 모르게 스스로와 아이, 배우자를 통제하는 실수를 할 수 있어요. 당신이 경험한 감정 기억들로 인해 당신이 과도하게 스스로와 아이를 통제하고, 그 외의 가능성을 잘 바라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해요.
혹여 나중에 아이가 ADHD 진단을 받는다 하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훈씨는 과거 겪었던 고통을 겪지 않게 하려 하지만, 미리 훈육을 하는 식으로 ADHD 발병 자체를 막을 수 없고 두려운 감정이 실린 훈육은 오히려 아이에게 정서적 악영향을 미칩니다. 발병을 차단하려 하기보다는 적기에 발견해 치료적 개입을 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죠. ADHD라 해도 적기에 적절한 개입이 된다면, 삶의 어떤 영역이든 제한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영훈씨가 ADHD 여부에 몰입해 아이를 통제하면 아이도 성장 과정에서 그만큼의 억압을 느낍니다. 먼저 아이의 고유한 기질을 알아보고 적절하게 대해 주면 아이도 당신의 사랑과 관심을 편안하게 느낄 겁니다. 모든 질환이 그렇듯 ADHD 역시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ADHD 진단 유무와 별개로 아이 스스로 기질을 인정하고 스스로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는 당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기도 모르게 동일시하게 되기 쉬운데, 그것 자체가 자식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영훈씨는 ADHD를 일찍 관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영훈씨 부부는 일찌감치 관심을 쏟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어요. 아이의 환경은 당신과 다르기 때문에 겪어갈 세상도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도한 개입을 유발하는 두려움 이면에 있는 과거 수치심 등의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영훈씨의 회복의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는 한국일보 사이트(https://www.hankookilbo.com/counseling) 또는 아래 바로가기를 통해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바로가기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