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호남 대변할 중진 의원이 없다"... 민주당 OB, 텃밭 노리는 이유

입력
2023.07.31 09:00
3면
구독

출마지역은 대부분 호남에 집중
현역 의원 교체 의향 60%에 육박
존재감 뚜렷한 '전국구' 선호 정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1층 공연장에서 '만약 지금 DJ라면?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박지원의 제언'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청주=뉴시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1층 공연장에서 '만약 지금 DJ라면?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박지원의 제언'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청주=뉴시스

내년 4월 22대 총선에서 부활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올드보이'들의 시선은 주로 호남을 향하고 있다. 지역 연고에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텃밭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당의 원로로서 수도권과 같은 험지에 나가 상대 당의 의석을 탈환하기보다 소속 정당의 후배들의 지역구를 노리는 것에 대한 당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험지 출마'라는 명분을 저버린 채 '텃밭 출마'라는 실리를 택한 것일까.

호남에서 내년 총선 출마가 유력한 올드보이로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전남 해남·완도·진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광주 서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전북 전주병)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과거 민주당의 주축이었으나 2016년 총선에 앞서 문재인 대표 체제에 반발해 탈당, 국민의당에 합류한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총선에서 이들은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 깃발을 들고 모두 당선됐다.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국민의당, 민생당 등이 모두 사라진 만큼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이변이 없는 한 당선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이들을 선거판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2004년 5월 12일 열린우리당 의장실에서 정동영(왼쪽)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확대간부회의를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04년 5월 12일 열린우리당 의장실에서 정동영(왼쪽)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확대간부회의를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당은 지지부진, 지역선 '전국구' 향수도

답답한 민주당의 현 상황 또한 올드보이 귀환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끊이지 않는 친이재명계·비이재명계의 갈등,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투자 논란 등으로 민주당을 외면하는 텃밭 민심을 다독이는데 자신들의 경륜이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 이들의 귀환을 바라는 지역 정서도 존재한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리지만, 중앙정치에서 호남을 대변할 중진들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2020년 총선에서 호남 지역구 의원 총 28명 중 3선 이상 의원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2016년 총선에서 3선 이상이 11명에 달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30일 "그간 호남에 일부 남아있던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의원들도 체급을 올리기 위해 수도권으로 지역구를 옮기곤 했다"며 "여전히 호남엔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인물을 바라는 향수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민주당에선 '호남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굳어지면서 호남 출신 3선 이상 의원들에게 수도권 험지 출마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물갈이를 지속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996년(15대)~2008년(18대) 총선까지 전북에서 내리 4선을 한 뒤 2012년(19대), 2016년(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다. 이낙연 전 총리도 2000년(16대)~2012년(19대) 총선에서 전남에서 내리 4선을 했고,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직을 마친 뒤 2020년(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다.

'물갈이 효용감' 낮은 호남 유권자들

문제는 이들을 대신한 신진 세력들이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호남에서 초선 의원 비율은 64%(18명)에 이르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의원은 드물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갈이는 계속되고 있으나 유권자들의 효용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지난 6월 서울경제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현 지역구 국회의원 교체 의향'을 묻는 질문에 호남은 제주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교체 의향(58.5%)을 보였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초·재선 의원들이 중앙정치에서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의회뿐 아니라 행정 경험으로 무장한 올드보이들의 경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 지역구에서만 터를 닦아 온 초선 의원 입장에선 이들이 위협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올드보이들이 신선함에선 떨어지지만 연륜에서 나오는 안정감을 무시하긴 힘들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올드보이들의 경쟁력과 별개로 당선 가능성에는 신중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호남에 강력한 초·재선 의원이 있었더라면 올드보이들도 출마 생각을 못 했을 것"이라며 "다만 호남의 높은 교체 여론이 올드보이 귀환으로 귀결될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신인이 많다고 해서 정치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유권자는 후보자가 젊든 늙었든 필요한 사람이면 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확인할 수 있다.

김정현 기자
우태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