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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지 말아야 할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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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의 일이다. 삼성그룹은 뜬금없는 보도자료 하나를 기자들 앞으로 보냈다. 이승엽이 홈런을 친 순간 당시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있던 고(故) 이건희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는, 서너 줄가량의 ‘소설 같은 일화’였다.
아마도 이 회장의 각별한 스포츠 사랑을 매개로 그의 ‘안위’를 알리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한편으론 상승세를 타고 있던 야구단에 대한 격려 메시지가 함축된 것으로 짐작됐다. 삼성은 4대 프로스포츠(야구 농구 축구 배구)단을 모두 보유한 몇 안 되는 대기업인데, 이 회장은 특히 야구에 관심을 보여 1982년 프로 원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그룹의 초일류주의와 궤를 같이한 스포츠단은 이런 오너의 관심 속에 각 종목 스타플레이어를 쓸어모으며 ‘윈 나우’를 추구하는 큰손으로 몸집을 불려 갔다. 삼성 스포츠단의 ‘복지’는 다른 팀 선수들에게 꿈같은 얘기였다. 연봉보다 많은 보너스를 받아가는 선수가 있었다는 둥, 승리하는 날마다 돈 잔치가 벌어져 구단 라커룸에는 지폐계수기가 있었다는 둥 삼성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썰'은 넘쳐난다. 돈으로 우승을 산다는 비아냥거림도 감수하면서 오직 우승에 혈안이 돼 있던 시절이다.
그렇게 해서 야구는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왕조’로 군림했고, 배구는 슈퍼리그 77연승, V리그 통산 8회 우승, 챔피언 결정전 7연패의 신화를 썼다. 축구는 2000년대부터 FC서울과 함께 K리그를 양분하는 최강 팀으로, 농구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의 강호로 꼽힌다.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언제부턴가 순위표 밑에서 찾아보는 게 빨라지더니 급기야 전대미문의 ‘꼴지 그랜드슬램’을 앞두고 있다. 올봄에 리그가 끝난 배구(삼성화재)와 농구(서울 삼성)가 꼴찌로 시즌을 마감한 데 이어 리그가 진행 중인 야구와 축구(수원 삼성)마저 사상 첫 최하위 굴욕 위기에 놓였다.
‘최순실 게이트’ 당시 승마용 말을 지원한 게 논란이 되면서 부담을 느낀 삼성은 스포츠에서 발을 뺐다. 2014년부터 각 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일원화되자 모기업의 묻지마식 지원이 막힌 구단들의 전력도 급속도로 약화됐다. 농구단의 최근 3년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선) 소진율은 82.62%→81.54%→73%였다. 즉 제도 안에서 허용된 예산조차도 다 소진하지 않을 정도로 고액 연봉 스타가 없다는 뜻이다. 자생력을 찾으라는 것인데 사실상 돈 안 되는 스포츠단은 선택과 집중의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실리주의라고 보는 시선이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난해 야구단이 13연패를 당하자 이재용 회장은 “심한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주변에 토로했다고 한다. 재계와 스포츠계는 당시 발언을 두고 아직 스포츠단에 관심이 식은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1990년대 후반 삼성이 내놨던 유명 광고 카피다. 당시 자동차 산업에 처음 진출한 삼성은 그룹의 일등주의를 자부하며 ‘품질 저하’ 우려를 불식시켰다. 스포츠는 예외인가? 충성도 높은 고객(팬)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무슨 이유로든 하자가 보이는 계열사를 방치하는 건 삼성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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