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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출산 보장·배드파더 양육비 추징...'모든 임신'을 국가가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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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출산, 양육은 누군가에겐 행복이지만 누군가에겐 불행일 수도 있다.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을 개인, 특히 엄마에게 떠넘길 때 영아 유기·살해 같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릴 가능성이 커진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①임신, 출산, 양육의 모든 단계마다 국가가 촘촘한 지원을 해서 사각지대를 없애고 ②아이뿐 아니라 엄마와 부모를 동시에 보호해 사회의 행복 총량을 늘리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다.
그 대안을 충실하게 시행하는 나라가 있다. 독일이다. 한국일보는 독일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이하 가족부)를 비롯해 임신, 출산, 양육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기관 3곳을 인터뷰해 독일의 제도와 거기 담긴 철학을 알아봤다.
독일은 '위기에 처한 아이와 부모의 안전과 안정'을 핵심 목표로 하는 정부 기관을 1984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엄마와 아이 -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보호 재단'이다.
재단은 가족부 지원 체계가 놓치거나 제때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주로 돕는다. 지난해 1억100만 유로(약 1,435억 원)가 재단에 투입됐다. 연평균 약 13만 명이 재단 도움으로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한 긴급·위기 상황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하이케 뷘테 재단 부국장은 23일(현지시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임부복과 신생아용 용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와 아이를 위한 주거지까지 포괄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가장 취약한 존재다. 도움이 절실하지만 지원 시스템에서 소외되기 쉽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임신 사실을 알리기 쉽지 않고 복지 제도가 그들을 배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안전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독일은 임신 관련 상담을 '당연한 법적 권리'로 보장한다. '임신 갈등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활동하는 임신 상담센터가 독일 전역에 약 1,600개 설치돼 있다.
임신한 여성은 아무런 조건 없이 상담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익명도 철저히 보장된다. 임신중지(낙태) 여부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고충을 털어놓고 상담사와 해법을 함께 찾는다. 의료, 재정 지원은 물론이고 심리 상담도 받는다. 가톨릭 기반 임신상담센터인 SKF는 "임신상담센터는 어떤 여성도 홀로 방치되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지만 아이를 기를 여력이나 자신이 없는 여성이나 부모들은 신원을 알리지 않고 아이를 낳는 '비밀 출생'을 선택할 수 있다.
2014년 5월부터 시행된 비밀 출생의 대략적인 절차는 이렇다. '여성이나 부모가 충분한 상담을 통해 비밀 출생을 하기로 결정한다. → 여성이나 부모의 신원은 익명의 코드로 전환돼 상담사 이외엔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 정부는 의료·재정·심리적 지원을 하는데, 보호자가 없는 여성에겐 병원 동행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세밀하다. → 출생 후 아이는 입양 등 후속 절차가 이뤄질 때까지 정부기관인 청소년복지청이 책임진다. 출생 후 마음이 바뀌었다면 엄마나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제도 이용이 어렵지는 않을까. 한국일보는 관련 채팅 서비스에 접속해 확인해봤다. 익명의 상담사는 45분 동안 기자의 신원 유추가 가능한 어떤 정보도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비밀 출생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 이후 베를린의 지역 상담사와 연결해줬다.
비밀 출생은 프랑스 등에서도 시행되는 제도이지만, 독일에선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이는 16세가 되면 엄마나 부모의 신원 및 출생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이는 아이를 특정 장소에 맡기고 엄마나 부모는 사라지는 베이비박스 제도의 단점을 보완한다. SKF는 "(엄마나 부모의 이름을 일방적으로 숨긴다는 뜻의) '익명'과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정보를 알리지 않는다는 뜻의) '비밀'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만약 엄마나 부모가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 가정법원이 개개인의 사정을 살펴본 뒤 정보 공개 여부를 최종 판결한다.
가족부 대변인은 한국일보에 "2023년 6월까지 1,095명이 비밀 출생을 택했다"며 "이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지원 체계를 이용할 수 없는 부모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닥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여러 겹으로 마련돼 있다. 출생 직후 산모의 건강 회복과 신생아 양육을 돕는 '가족 조산사 제도'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산후 도우미와 비슷하지만, 한국은 정부 지원에 따라 5~25일만 무료로 이용 가능한 반면 독일에서는 산모 및 가족 상황에 따라 최대 1년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부모가 원하는 기간 동안 아동 전문 간호사, 지자체 관계자 등이 가정 방문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한다.
육아휴직 등으로 수입이 감소한 부모를 위한 수당도 지급된다. 소득이 적을수록 상대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는 구조이며, 수급액을 줄이는 대신 수급 기간을 늘리는 식으로 각자 상황에 따라 설계를 달리 할 수 있다.
한부모 가정을 위한 제도도 도톰하다. 남성인 경우가 많은 한쪽 부모가 양육비를 주지 않을 때 정부가 양육비를 선지급한다. 국가가 먼저 양육비를 지불한 뒤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부모로부터 추징하는 식이다. 자녀 연령에 따라 월 187~338유로(26만5,697~48만244원)로 차등 지급된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 몰라도 선지급할 정도로 지원 범위가 포괄적이다. '추징'이 아닌 '양육'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독일은 부모가 육아 노동에서 잠시 벗어날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한다. 일명 '부모 휴가'다. 육아로 인한 신체적 통증, 수면 장애, 파트너와의 갈등 등에서 고통을 받는 여성과 부모들은 '엄마 회복 재단'에 등록된 1,000개 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진단 이후 부모는 병원 치료는 물론, 요가, 스파 등 시설에서 최대 3주간 머무르며 심신을 회복할 수 있다. 아이를 대동할 수도, 혼자 이용할 수도 있다. 치료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한다. 2019년 4만7,000명의 엄마, 2,100명의 아빠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 또한 '부모 안정'이 '아이 안전'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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