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알권리' 강화 입양특례법, '유기' 부채질했나

입력
2023.07.24 14: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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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놓친 아기들: ①이름도 없이 떠난 영아들]

한 미혼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한 미혼모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출생 미신고 영아 상당수가 베이비박스 등에 유기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입양특례법’ 개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아동 권익을 강화하겠다며 도입한 ‘입양 전 출생신고’ 규정이 되레 제도 밖 아이들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탓이다.

1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2015~2022년 의료기관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2,123명 중 지방자치단체가 소재 파악에 실패한 아동은 모두 1,095명이다. 베이비박스 등 유기(601명ㆍ54.9%)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미신고 영아들이 범죄 피해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유기아동은 2012년을 기점으로 증가했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의 연도별 베이비박스 입소 아동 수는 2011년 35명에서 2012년 79명, 2013명 252명으로 급증했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전체 아동 중 유기아동이 차지하는 비중(복지부 통계) 역시 2011년 2.91%에 불과했지만, 2012년 3.39%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직전인 2018년 8.17%까지 늘었다

추세적 변화는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아동 알권리 보호를 이유로 입양 전 친생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면서, 출산기록을 남길 바엔 몰래 자녀를 버리는 게 더 낫다는 부모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 홀로 출산’을 한 미혼모나 범죄 피해로 아이를 갖게 된 산모들이 복잡한 입양 절차를 기피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일보는 15~19일 미혼모 51명을 대상으로 심층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2.7%(32명)가 "출산 후 아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든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한국일보는 15~19일 미혼모 51명을 대상으로 심층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2.7%(32명)가 "출산 후 아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든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이번 사태 전에도 출생신고 의무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2019년 정책분석평가학회보에서 홍정화 사이버한국외대 교수는 “역설적 현상을 해소하려면 아동 권익과 더불어 친생모 개인정보도 보호하는 방법이 탐색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전국입양가족연대도 지난달 국회에서 출생신고 조항의 맹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물론 법 개정과 유기 증가의 인과관계를 단언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친생부모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아도 반드시 합법적 입양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법에만 기댈 게 아니라 차라리 양육 포기 자체를 줄이기 위한 각종 지원책 모색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2014년 권재문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입양특례법 재개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논문에서 “신생아 유기는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고려 없이) 법이 개정되면 양육 포기가 더 쉽게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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