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문학이 현실에 패배하다

입력
2023.07.22 00:00
22면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수근 상병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수근 상병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에 디씨인사이드에서 한 사람이 매우 인상적인 상하차 일용직 후기를 올렸다. 고된 상하차 일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해병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식고문(그러니까 토할 때까지 과자를 먹는 고문)을 당한 그는, 그날 밤 선임에게서 "모든 것은 네 책임이고, 네 과오는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의 감동을 되새기며, 그는 뼈 빠지게 일한다.

현대 문명을 살아가며 천부인권이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상당히 기이한 이야기다. 디씨인사이드가 악명 높은 커뮤니티 사이트긴 하지만, 그곳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낀 듯하다. 그 글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해병문학이라는 것을 창작하기 시작했으니.

해병문학은 해병대에서 터지는 온갖 부조리와 가혹행위들을 풍자하기 위해 쓴 글이다. 상당히 불쾌한 수준의 차별도 포함해서. 어쨌든 사람들은 이게 재미있었는지 몇 년이 넘게 썼고 또 쓰고 있다. 나도 그 글들을 몇 개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보면 해병대라는 조직 자체가 무슨 폭력, 고통, 고뇌를 즐기는 악마들의 조직처럼 묘사된다. 어쨌든 인터넷에서 이런 종류의 장난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해지기 마련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수해현장에서 실종된 사람을 찾던 해병 세 명이 휩쓸렸고, 안타깝게도 그중 한 명이 실종됐는데,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비극적인 뉴스를 보았다. 이제 갓 소년 티를 벗었을 내 다음 세대의 청년이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부모님이 울부짖는 영상 캡처 두 장을 보았는데, 자막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처음에 이게 비극적인 사고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파면 팔수록 이 사건이 인재라는 것이 드러났다. 물살이 몰아치고 있는 강에서, 해병대원들에게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고 서로 손을 잡게 한 채로 걷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세 명이 휩쓸렸고, 결국 한 명이 사망하고 만 것이다.

대체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은 걸까? 인터넷에 검색하니 구명조끼 최저가가 2만 원이다. 소매가가 2만 원! 나는 20년 동안 어촌에서 살았고, 급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안다. 세찬 물살이 무릎까지만 차올라도, 성인 남자조차 걷기가 힘들다. 그런데 애초에 상륙이라는 특수 임무를 위해 만들어진 해병대에서 일하는 간부들이 그걸 몰랐을까? 알았어도, 몰랐어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는 도중에 해병대 관계자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장병들은 배영해서 빠져나왔는데 배영을 그 순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급류에 휘말리고 패닉에 빠진 사람이 그 순간 배영을 못 해서 아쉽다니, 조직이 벌인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참으로 총체적 난국이구나 생각할 즈음, 한 사진 기사를 보았다. 찾아낸 시신을 헬기로 인양하고, 사람들이 여기에 경례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살아있을 때는 한 용사를 구명조끼도 없이 급류에 밀어넣은 조직이 ‘예우’를 논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번개처럼 해병문학이라는 단어가 지나갔다. 아아, 나는 생각했다.

이럴 수가, 현실이 다시 한 번 픽션에 승리를 거뒀구나. 이 조직은 진짜 끔찍하기 그지없는 조직이구나 하고.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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