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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적 '대민지원'이 부른 참사... 해병대 "구명조끼 지급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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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순직한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 사고를 계기로 재해·재난 상황에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일고 있다. 군 본연의 임무와 동떨어지는 것은 물론, 정부가 손쉽게 인력을 동원하는 데 급급해 장병들의 안전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무성하다.
해병대는 20일 "재난현장조치 매뉴얼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공개 여부는 검토 후에 결정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면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며 호우피해 복구작전에 투입된 부대의 안전에 대해 현장에서 점검하고 보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해병대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매뉴얼에는 풍·수해는 물론 한파, 산불, 지진 등 재난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경우가 상정돼 있다. 하지만 수해지역에서의 구명조끼 착용 같은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최용선 해병대 공보과장은 “당시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며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고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거나 규정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안전사고의 '구멍'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만한 대목이다. 이와 달리 해병대는 실종자 수색작전에서 상륙용고무보트(IBS)를 타고 수상탐색 임무를 수행한 장병들에겐 구명조끼나 드라이수트를 착용하도록 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수색·구조활동 때 반드시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안전장구류를 착용케 하라는 등의 관련 지시사항이 오늘 아침 시달됐다”고 덧붙였다. 뒤늦게 구두 지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운 셈이다. 군 소식통은 “군은 재난관리 대응체계를 통해 각 군의 활동을 보고받고 상황을 전파한다”면서 “모든 상황을 상세하게 지정해 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군은 어떤 근거로 장병들을 구조현장에 내보냈을까. 재난·안전관리 기본법 39조는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동원 가능한 장비와 인력 등이 부족한 경우 국방부장관에게 군부대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민간 차원에서 자연재해를 복구하기 어렵다면 군 병력이 나선다는 것이다. 군은 유사시를 대비한 전력이지만, 생소한 대민지원 현장에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셈이다.
국방부도 ‘대민지원활동 업무훈령’과 ‘국방 재난관리훈령’에 따라 재해·재난 등의 긴급상황에서 사전·사후 조치를 지원할 수 있다. 이들 훈령은 '정부부처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병력 및 장비 등의 지원을 요청받은 각급 부대의 장은 군 작전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한다'고 규정했다.
다만 이는 법률보다 낮은 단계인 ‘행정규칙’에 불과하다. 국방부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될 소지가 적지 않다. 정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대민 홍보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도 있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대민지원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관련 내용들에 대한 지침들을 필요한 경우에 하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병대의 경우 김계환 사령관은 1월 ‘해병대 안전단’ 창설식에서 “(지난해) 힌남노 태풍과 대형 산불 등으로 재난대비·피해복구에 국민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사령관의 발언처럼 해병대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포항 지역을 강타했을 때 전례 없이 상륙돌격장갑차(KAAV) 등을 포항 시내에 급파해 구조와 복구 작업을 수행하며 호평받았다. 당시 기억에 젖어있는 해병대가 주둔지도 아닌 내륙지역에서 실적을 의식해 무리하게 구조활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고로 사령관을 비롯한 해병대 지휘부에 대해 엄중한 문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병들에게 무리한 역할을 부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국방부는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해병대는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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