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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으로 끝난 태국 민주화…'40대 개혁 총리', 군부 힘에 굴복

입력
2023.07.19 19:21
수정
2023.07.19 19: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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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피타 대표 의원 직무 정지
총리 선출 투표 직전 기습 발표
군부, 정치 개혁 싹마저 잘라

피타 림짜른랏 태국 전진당 대표가 19일 방콕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의원 직무 정지 결정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져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피타 림짜른랏 태국 전진당 대표가 19일 방콕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의원 직무 정지 결정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져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태국 군부가 장악한 헌법재판소가 민주화의 상징인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의 국회의원직 직무를 정지했다. 군부가 노린 건 두 가지다. ①피타 대표가 차기 총리로 선출돼 집권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②그가 정치권에 남아 개혁 바람을 이어가지 못하게 한 것. 태국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전진당 집권 사실상 마침표

19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태국 헌재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제기한 피타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성립한다고 보고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의원 직무를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피타 대표의 총리 선출이 달린 의회 2차 투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서다.

지난 5월 총선 당시 태국 군부는 피타 대표가 방송사 주식을 보유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태국 헌법은 언론사 사주나 주주의 공직 출마를 금지한다. 군부가 장악한 헌재와 선관위가 총리 선출을 앞두고 피타 대표의 손발을 차례로 묶은 것이다.

피타 대표의 집권길은 사실상 막혔다. 그는 이달 13일 1차 의회 투표에서 전체 의석 749석(상원 249석·하원 500석)의 과반(375석)에 미치지 못하는 324표를 얻으며 고배를 마셨다.

의원 자격 정지로 피타 대표가 총리 피선거권을 상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날 헌재 결정은 2차 투표에서 개혁 성향인 그를 총리로 뽑을지를 두고 고민한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명분을 줬다. 게다가 단 한 표가 소중한 상황에서 피타 대표 본인의 투표권마저 빼앗겼다.

19일 태국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진당 지지자들이 피타 림짜른랏 대표의 총리 선출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19일 태국 방콕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진당 지지자들이 피타 림짜른랏 대표의 총리 선출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집권 기회 제2당으로 넘어가

지난 총선에서 태국 유권자들이 전진당을 하원 제1당에 밀어 올린 것은 낡은 군주제를 개혁하고 군부를 심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군부는 힘을 동원해 민의를 무시했다.

피타 대표는 2020년 해산된 전진당의 전신 퓨처포워드당 대표이자 ‘40대 개혁 기수’ 열풍을 일으켰던 타나톤 쭝룽르앙낏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그 역시 군부의 권력 제한 등을 주장하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정치에 복귀하지 못했다.

집권 기회는 하원 제2당인 푸어타이당에 넘어가게 됐다. 푸어타이당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측근이자 부동산 재벌 스레타 타위신(60)을 총리 후보로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스레타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총리가 될 준비는 돼 있다. 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할 것”이라며 의욕을 드러냈다.

푸어타이당이 집권하려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푸어타이당은 전진당과 맺은 연대를 끊고 군부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전진당과 푸어타이당이 약속한 각종 개혁 공약이 무산되는 것이다.

태국의 정국은 혼미해질 전망이다. 일부 전진당 지지층은 1차 투표 이후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2020년 태국을 뒤흔든 반정부 시위가 재개될 수도 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9일 “태국 정세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 “지금이 태국이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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