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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폭스 백신이 소환한 그 시절 '불주사'의 기억

입력
2023.07.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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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까지 어린이에게 공포의 대상 불주사
BCG 백신 접종 때 알코올램프로 바늘 소독
모든 게 부족해 주삿바늘도 돌려 쓰기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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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80년대까지는 알코올램프로 주삿바늘을 소독해 재사용했다. BCG 백신이 불주사로 불렸던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80년대까지는 알코올램프로 주삿바늘을 소독해 재사용했다. BCG 백신이 불주사로 불렸던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엠폭스(MPOX·원숭이두창) 환자가 이달 16일 기준 누적 125명으로 늘었습니다. 1주일에 서너 명 정도 꾸준히 발생하지만 우려와 달리 폭발적으로 확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밀접접촉이 동반되는 한정된 상황에서만 전파되는 특성에다 백신 1차 접종자가 5,000명을 넘은 영향으로 보입니다.

엠폭스 감염을 막기 위해 이전까지 의료진만 맞았던 3세대 두창(천연두) 백신은 지난 5월 초부터 고위험군으로 접종이 확대됐는데, 이후 자신의 어깨를 슬쩍 만지는 이들도 간혹 보입니다. 흉터처럼 어깨에 남은 주사 자국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40대 이상입니다. 국내에서는 두창이 1961년 이후 보고되지 않아 1979년부터 두창 백신도 국가예방접종에서 빠졌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어릴 때 맞은 불주사가 엠폭스를 예방하는 두창 백신"이라고도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불주사 접종은 사실이겠지만 그게 두창 백신은 아니었습니다.

열악했던 시절, 어린이들에게는 강렬한 공포

대한뉴스에 기록된 예방접종 장면에서 어린이가 울고 있다. 대한뉴스 캡처

대한뉴스에 기록된 예방접종 장면에서 어린이가 울고 있다. 대한뉴스 캡처

22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그 시절 불주사라 불렸던 주사 방식은 의학적으로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주삿바늘을 알코올램프로 달궈 여러 번 접종한 게 불주사라는 이미지로 지금까지 남은 것이죠. 지금이야 주삿바늘을 돌려 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모든 게 넉넉하지 못했던 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그랬습니다.

당시 중증 결핵을 예방하기 위한 BCG 백신의 별칭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불주사였습니다. 바늘이 뜨거운 상태로 접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로 달구는 데다 맞고 나면 볼록한 흉터까지 생기니 어린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BCG 백신은 지금도 생후 4주 이내에 맞아야 하는 국가예방접종입니다. 갓난아이 때 접종이 이뤄지니 맞는 입장에서는 BCG 백신, 즉 불주사를 기억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해 보입니다. 많은 40대 이상이 "초등학생 때 불주사의 공포에 떨었다"고 하는데도 말이죠.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후 4주 이내 접종은 같지만 1997년까지는 초등학생 때 재접종이 한 번 더 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그해 재접종이 필요 없다고 발표하며 이후 국내에서도 BCG 백신 재접종이 사라진 것이죠.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된 초등학생 때 불주사는 재접종이 없어지기 전인 1980년대 이전의 기억일 겁니다. 권근용 질병청 예방접종기획과 과장은 "70년대생까지는 초등학교에서 줄 서서 맞았던 게 BCG 백신"이라며 "굉장히 불결하지만 그때는 1회용 주사침에 대한 보편적 원칙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기였다"고 했습니다.

불주사가 어깨 흉터의 이유는 아니다

1세대 두창 백신. 동결건조 백신(왼쪽)과 희석액(가운데), 플라스틱 용기 속 분지침이 한 세트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자료

1세대 두창 백신. 동결건조 백신(왼쪽)과 희석액(가운데), 플라스틱 용기 속 분지침이 한 세트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자료

두창 백신 접종은 BCG 백신과는 달랐습니다. 1978년까지 두창 백신은 생후 2~6개월에 1차, 5세에 2차, 12세에 3차 접종이 권고됐고 주사기가 아니라 끝이 두 갈래인 분지침이 사용됐습니다. 백신 분말을 희석한 용액에 분지침을 담갔다 빼면 표면장력에 의해 1명 분 백신이 묻어 나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피부에 수직으로 15번 찔러야 했습니다. 각각의 자국은 직경 5㎜ 이내의 원 안에 모여야 하고, 모든 과정은 3초 안에 끝내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여기에 백신을 맞은 의료인만 시술이 가능한 데다 접종자의 팔을 잡는 방법, 사후 관리 등까지 꼼꼼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2세대 백신까지는 그만큼 접종 과정에서 두창 감염 우려가 컸던 겁니다. 바늘을 불에 달궈 재사용하는 불주사도 불가능했습니다.

2세대 두창 백신 접종에 사용된 분지침은 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자료

2세대 두창 백신 접종에 사용된 분지침은 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자료

40대 이상의 어깨에 구멍 자국이 많은 원형 흉터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두창 백신을 맞았다는 증거입니다. 병원체가 피부에 진입해 국소적인 두창 감염을 일으킨 것이죠.

시간이 오래 지나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흉터가 볼록했다면 BCG 백신의 흔적일 테고요. 다만 이게 불주사로 인한 흉터는 아닙니다. 백신 자체의 반응이죠. 불로는 주삿바늘을 소독만 했을 뿐 피부를 찌를 때는 흉터를 남길 만큼 뜨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CG 백신은 피내용(주사형)과 경피용(도장형) 두 종류가 있는데, 피내용은 지름이 5~7㎜인 피부 융기가 생깁니다. 지금도 피내용을 맞으면 똑같습니다. 경피용은 피부에 주사액을 바른 뒤 바늘이 9개인 도구로 도장처럼 두 번 찍는 방식입니다.

BCG 백신 피내용(위)과 경피용은 접종 방식이 달라 흉터도 다르게 남는다. 질병관리청 제공

BCG 백신 피내용(위)과 경피용은 접종 방식이 달라 흉터도 다르게 남는다. 질병관리청 제공

접종 비용이 무료인 국가예방접종은 용량을 일정하게 조절 가능한 피내용만 해당됩니다. 경피용을 선택하면 별도의 비용을 내고 맞아야 합니다. 그래도 요새 부모들은 아무래도 흉터가 덜 보이는 경피용을 선호하는 분위기입니다.

엠폭스 노출 이후에 맞아도 효과 있는 백신

현재 사용 중인 엠폭스 백신은 덴마크의 소규모 생명공학기업 바바리안 노르딕이 개발한 3세대 두창 백신 '진네오스'입니다. 엠폭스가 두창과 같은 계열 병원체로 인한 감염병이라 진네오스가 통한다는 것이죠.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이 지난해 엠폭스 백신으로 승인하자 우리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사용 중입니다. 바바리안 노르딕 말고는 아직 3세대 두창 백신을 내놓은 기업이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2세대 두창 백신을 만든 HK이노엔이 개발 중입니다.

바바리안 노르딕 홈페이지 캡처

바바리안 노르딕 홈페이지 캡처

두창 백신은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했어도 증상이 발현하기 전에 맞으면 효과가 있다는 점이 여타 백신들과 다릅니다. 이런 특성은 엠폭스에도 해당합니다. 환자와 접촉 후 4일 이내에 맞으면 발병을 막고, 10일 이내에 접종하면 증상이 생겨도 경미합니다. 권근용 과장은 "병원체들은 몸 안에서 바로 증식하기 때문에 사전에 백신을 맞아 면역반응으로 항체를 생성할 준비가 돼야 하는데, 두창은 그렇지 않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세대와 3세대 백신은 효과성보다 안전성에서 갈립니다. 3세대 백신은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이상 반응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흉터도 안 생기고요. 엠폭스 확산 방지 대책으로 첫손에 꼽히는 이유입니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엠폭스는 70년 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병"이라며 "중증화나 사망한 사례가 극히 적고 치료제와 백신이 있어 환자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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