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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권고 무시' 충북, 지하차도 침수위험 평가 '구멍'

입력
2023.07.20 04:30
수정
2023.07.20 07:5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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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배수시설 다양하게 평가하라" 했지만
충북도는 설치 여부만 따져... "행안부 지침"

18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수색구조현장에서 과학수사대 관계자가 희생자 유류품 수집 등 작업을 위해 지하차도로 이동하고 있다. 청주=연합뉴스

18일 오전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수색구조현장에서 과학수사대 관계자가 희생자 유류품 수집 등 작업을 위해 지하차도로 이동하고 있다. 청주=연합뉴스

정부가 3년 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계기로 물에 잠길 수 있는 지하차도의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을 개선하도록 권고했지만, 정작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위험 평가 항목 자료를 보면, 충북도는 지하차도의 안전 등급을 총 8개 항목별로 위험도를 점수화 해 합산하고 있다. △침수이력(30점) △침수위험(20점) △차량통행량(20점) △차로 수(10점) △지하차도 연장(10점) △설계유입량(10점) △배수시설(10점 감점 가능) △안전시설(10점 감점 가능) 등을 점수로 매겨서(가점 또는 감점) 총점을 합산한다.

여기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배수시설 평가 항목이다. 충북도 기준은 배수시설의 유무만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배수시설이 있으면 감점 10점이고 없으면 0점이다. 총점이 높을수록 위험하다는 의미여서, 감점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위험 평가 항목 중 '배수시설'은 배수시설이 있으면 10점 감점, 없으면 0점이다.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위험 평가 항목 중 '배수시설'은 배수시설이 있으면 10점 감점, 없으면 0점이다.

그러나 한국일보 취재 결과 이렇게 시설 유무만으로 점수를 주는 방식은, 정부가 2년 전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던 평가 방법이다. 2021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지하차도 침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권익위는 "행정안전부의 침수 위험 지하차도 등급화 기준을 좀 더 객관화하고 구체화해, 지하차도의 침수위험도를 제대로 반영토록 했다"고 밝히며, 대표적으로 배수시설 항목을 예로 들었다. 당시 권익위는 "지금 배수시설은 단순히 시설 유무를 평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실제 배수능력 여부를 평가할 수 있도록 △펌프 개수 △자동 작동 여부 △우기 전 준설여부 등으로 구체화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2년 전 정부 중앙부처가 잘못된 사례와 개선 방향 등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했는데도, 충북도는 이런 정부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충북도의 안전시설 평가 항목에도 권익위 권고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현행 안전시설 배점 산정기준은 '경고판 차단기 등 안전시설 설치 여부'가 전부다. 어떤 안전시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구체적인 설치·작동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준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 7월 발표한 지하차도 침수 재발방지 제도 개선안. 침수 위험 평가 개선을 주문하며 '배수시설'(네모 안) 항목을 콕 집어 예로 들며 "시설 설치 여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취지의 설명이 담겨 있다. 권익위 보도자료 캡처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 7월 발표한 지하차도 침수 재발방지 제도 개선안. 침수 위험 평가 개선을 주문하며 '배수시설'(네모 안) 항목을 콕 집어 예로 들며 "시설 설치 여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취지의 설명이 담겨 있다. 권익위 보도자료 캡처

당시 권고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배수펌프가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작동되는지 등이 중요해, 평가에서 유무만 따지는 건 문제가 있었다"며 "(배수펌프 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많아서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이라 권익위는 방향성만을 제시했다"며 "(소관부처인) 행안부가 전문가나 지자체 의견을 청취해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만들라는 취지의 권고였다"고 설명했다.

본보의 지적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행안부의 지침을 따랐다"고 해명했다. 행안부는 "내부 문서라 행안부 지침이 무엇인지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행안부가 권익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면, 충북 이외의 지자체 역시 이런 식의 침수 지하차도 평가기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 위험 평가' 자료 1쪽에는 '안전시설' 항목 평가 기준으로 "경고판 차단기 등의 설치 여부"로 나와 있다.

충북도의 '지하차도 침수 위험 평가' 자료 1쪽에는 '안전시설' 항목 평가 기준으로 "경고판 차단기 등의 설치 여부"로 나와 있다.


반면 2쪽의 '안전시설' 항목에는 "인근 하천의 월류로 인한 침수 가능성 여부"로 평가하라는 전혀 다른 기준이 담겨 있다.

반면 2쪽의 '안전시설' 항목에는 "인근 하천의 월류로 인한 침수 가능성 여부"로 평가하라는 전혀 다른 기준이 담겨 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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