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당신 아파트를 붕괴시킬 수 있다… 위험한 '땅속 온난화'

입력
2023.07.19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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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케이블 등 열 받은 지반 뒤틀려
극한호우에 동굴 침식·벽화 훼손
인류문화유산도 기후변화 직격탄

기록적 폭우로 훼손 위기에 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간쑤성의 둔황 막고굴. 게티이미지뱅크

기록적 폭우로 훼손 위기에 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간쑤성의 둔황 막고굴.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이 유발한 지구 온난화가 건물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폭염, 폭우를 유발하는 '대기 온난화'와는 다른 '땅속 온난화' 때문이다. 매립된 전기 케이블과 지하철 등이 내뿜는 열로 달궈진 지반이 뒤틀리면서 건축물이 기울거나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문화재도 위협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인 둔황 막고굴이 극명한 사례다. 극한호우로 동굴이 침식되고 벽화가 벗겨져 내리고 있다.

'지하 기후변화', 조용하게 지상 건물 균열 내

17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커뮤니케이션즈 엔지니어링' 저널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지하 기후변화'가 도시 지반을 변형시키면서 '조용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지하 기후변화란 땅속에 촘촘히 매설된 인프라에서 발생한 열 때문에 지표면 아래가 달궈지는 현상이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도시 지하 100m의 평균 온도가 섭씨 0.1~2.5도 상승했다는 선행 연구 결과도 있다. 건물 난방관, 지하철, 하수도, 고압 케이블, 지역난방시스템 등이 모두 열원인 탓에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일수록 지하 기후변화의 영향이 크다.

땅속 온난화는 수십 년에 걸쳐 수㎜씩 지각의 팽창과 수축을 야기하면서 건물의 구조적 변형을 유발한다고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경고했다. 이는 미국 시카고 루프 지역 지상과 지하에 온도 센서 150개 이상을 설치해 3년간 수집한 데이터로 1951년부터 2051년까지의 지하 기후변화 영향을 모의 실험해 도출한 결과다.


지난달 2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루프 지역. 시카고=AP

지난달 2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루프 지역. 시카고=AP

연구팀은 "지하 기후변화가 즉각적으로 건물 붕괴로 이어지진 않는다"면서도 사람이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지반 변화가 초래할 '조용한 위험'을 경고했다. 이번 연구의 주 저자인 알렉산드로 로타 로리아 노스웨스턴대 조교수는 "건물 기초나 방수벽, 터널 등의 내구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기울거나 균열 난 구조물의 틈새로 물이 쉽게 유입돼 철근 등 자재에 부식을 일으킬 수 있다"고 CNN에 말했다.

영국 런던의 지열을 연구한 아살 비다르마흐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지질공학과 부교수는 "앞으로 100년 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가만히 앉아서 100년을 기다려선 안 된다"고 미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게다가 이번 연구는 대기 온난화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2051년까지 시카고의 평균 기온이 오르지 않고 최근 온도로 유지되는 상황을 가정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닌 가장 보수적으로 점친 전망인 셈이다.

'불교 예술 보고' 석굴은 폭우에 훼손 위기

인류 문화유산도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건조한 사막 지대인 중국 북서부에 극한호우가 쏟아지면서 간쑤성에 있는 둔황 막고굴이 직접적 훼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4세기부터 조성된 막고굴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교 예술의 보물창고다.

동굴 735개에 남은 수많은 벽화와 조각은 습기에 취약하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동굴 내부로 빗물이 새어 들고 습도가 93%로 치솟으면서 벽화가 벗겨지거나 갈라지고 있다. 한 석굴은 지난해 8월부터 0.3~0.5㎝ 균열이 생기고, 그사이로 물이 스며들면서 벽면이 크게 손상됐다.


왕웨이동 장예시 문화재연구관리소 부소장이 둔황 막고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왕웨이동 장예시 문화재연구관리소 부소장이 둔황 막고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리 자오 그린피스 베이징사무소 선임연구원은 "사막 지대의 강우량 증가는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며 "습도 급상승, 돌발적 홍수, 동굴 침수가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눈앞에서 일부 유물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1961~2021년 간쑤성의 평균 기온은 10년마다 0.28도씩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보다 빠른 속도다. 이는 짧은 시간에 쏟아붓는 집중호우를 불렀다. 2000년 이후 간쑤성의 강우량은 증가한 반면 강우일수는 오히려 줄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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