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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서 '대기업 취업 축하' 현수막 보면, 청년 유출을 자랑하는 듯해 서글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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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격주로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 각자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린다.
김태욱(청년문화기획 이공이공 대표):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학에 다닌 것 포함 10년간 타지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기획사를 경영하고 있다. 안동은 문화· 관광·도시 재생 등에 참여할 손길이 필요하고 관련 예산도 적지 않지만, 참여할 젊은 인력이 부족하다. 젊은이들에게 많은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다. 청년들에게는 콘텐츠로서 가능성이 많은 블루오션이면서 동시에 정치·사회적으로 척박하고 폐쇄적인 레드오션이기도 하다.
이지윤(안동대 신문사 편집국장): 포항 출신으로 대학 4학년이다. 안동대학교 생활복지학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와 아동을 공부하고 있다. 2학년 때부터 학보사 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철승(안동대 대학원): 서울 출신으로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학부를 졸업했고, 학부 때 대학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다. 지금은 민속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유아란(안동온사람들 대표): 경기 광명 출신으로 2년 전 안동에 내려와 로컬 청년 벤처기업을 1년째 운영하고 있다. 청년들이 안동의 여러 자원을 활용해 수익을 올리며 정착할 방법을 찾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공모하는 마을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참여해 장관 우수상을 받았다.
허승규(안동청년 공감네트워크 대표): 서울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인 안동에 돌아와 청년들과 함께 공익 활동을 하고 있다. 녹색당 후보로 시의원에 도전해 두 번 낙선했으나, 점점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 모두 안동 아닌 곳에서 성장했거나 대학을 나온 후 자발적으로 안동에 정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아란: 정부 지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안동을 선택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 3명 모두 타지에서 안동으로 온 청년이다. 안동은 경북에서 관광 문화자원 산업 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잠재력이 큰 곳이지만, 이런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주민들과 마을을 같이 발전시킬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사업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 낼 모델을 찾고 있다.
지윤: 무엇보다 수도권에 비해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에서 막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에게는 기회가 더 많다. 그래서 안동에서 경력을 쌓은 후 다른 지역으로 이직하는 것도 고려하는데, 가족들은 더 큰 곳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만류한다.
태욱: 지윤씨 고민은 취업을 원하는 다수 지역 청년의 고민일 것이다. 수도권에서 힘든 경쟁을 뚫고 취업해 비싼 주거비용 등에 쪼들리며 경력을 쌓아야 하는지, 아니면 안동에서 취업해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여유롭게 사는 대신 다른 지역에서는 인정받기 어려운 경력을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창업을 원한다면 안동이 수도권보다 기회가 많다. 전국에서 몰려와 안동에서 창업한 친구들이 많다. 화장품 만들려고 온 친구도 있고 지역 관광과 특산물 홍보를 위한 디자인ㆍ영상 사업이나 정책사업을 위해 오기도 한다. 다만 걱정되는 건 지방소멸대응기금이나 균형발전특별회계 사업 등 예산을 노려 지원만 받고 2, 3년 내 다른 곳으로 떠나려는 ‘메뚜기’ 창업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안동은 그래도 이런 창업 메뚜기에 대한 방어가 되고 있지만, 인근 지역에선 비슷한 사례를 많이 보고 듣고 있다.
- 반대로 청년이 안동을 떠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태욱: 최근 국가산업단지에 선정되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유치에 대한 기대가 높다. 국가산단이 향후 10년 뒤 지역 패러다임을 변화시킬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안동은 산업단지 입지로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 큰 기업들이 부족하다 보니 안동 청년들의 선택지는 공무원 아니면 자영업이다. 안동에 위치한 수많은 문화재가 오히려 지역 발전에 장애 요소이기도 하다. 공식 문화재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적극적으로 활용해 산업화하기 힘들다. 원형에 손댈 수 없고 주변을 개발할 수 없다. 안동호도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수상레저 산업 발전에도 제약이 많다. 그래도 문화재와 안동호는 타 지역이 모방할 수 없는 안동만의 관광자원이기 때문에 안동 관광의 성장을 모색하는 청년 사업가들에게는 기회가 가득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다.
지윤: 서울에 가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고향 포항으로 돌아가거나 안동에 남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동대 곳곳에 걸린 대기업 취직 축하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회의감이 든다. 마치 대학이 앞장서서 지역 인력 유출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 지역 대학은 그 지역 일자리를 위한 맞춤 전공 학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텐데.
철승: 기본적으로 대학이 지역과 발맞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장 취업률을 높인다고 컴퓨터공학과 AI 관련 학과 지원을 늘린다. 하지만 그 지원을 받은 학생은 결국 타지 기업에 취업할 것이다. 최근 안동대는 안동에 공장이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산학 협동으로 백신학과를 신설했다. 한 학년 30명 정원인데, 그중 몇 명이나 SK에 취업할지 회의적이다. 졸업생이 안동에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유산, 관광 관련학과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안동대와 지역의 상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안동은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는 도시다. 이런 점이 청년들이 정착하고 살아가는 데 장애 요인이 되지는 않는지.
승규: 특정 가문이나 학맥 등의 연고 집단의 영향력과 이로 인한 폐쇄성 등의 문제는 안동뿐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일 것이다. 안동만의 특징이 있다면 씨족문화 전통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는 느끼기 힘들고, 지역 기득권에 가까워져야 알 수 있다.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주요 문중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시ㆍ군보다 조금 더 셀 거다. 청년들 입장에선 그런 문화가 강하면 구리다고 느끼게 된다. 성씨는 자기가 선택할 수 없지 않나. 꼭 그것 때문에 안동에서 청년이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화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은 적지 않다.
철승: 차별과 불이익까지는 아니더라도 외지인이 느끼는 심리적인 장벽은 분명히 있다. 안동에서 직장을 구할 경우 권씨나 김씨라면 면접관과 적어도 악수 한 번은 더 할 수 있다. 지역 자체에 워낙 문중문화가 강해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20대 또래들도 농담조로 본인이 무슨 파 몇 대손인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승규: 종친회가 강하면 남성 위주 질서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고향에 돌아와 초기에 젊은이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강연회를 열었고, 안동의 향토잡지에서 20년간 지역 인물들을 인터뷰해온 여성 선배를 강사로 초청했다. 그런데 그분 말씀이 안동에서 강사로 나서 본 게 처음이라는 것이다. 지역을 꿰뚫고 있고 웬만한 언론인이나 학자보다 내공이 강한 분인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이크가 늦게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강의를 들은 대다수 청년들이 멋진 여성 선배의 얘기를 듣고 감명받았다고 했다.
-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동에서 정치를 하는 건지.
승규: 어떤 주류적인 문화가 형성됐을 때 그걸 소수의 개인이 바꾸긴 어렵다. 다만 주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가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청년들과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지지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2인 선거구에 출마해 녹색당으로 3등의 득표를 올려 아쉽게 낙선했다. 안동은 과거에도 혁신을 이룬 역사가 있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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