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라면값 눌렀던 정부… 버스·지하철 뛸 땐 '멀뚱멀뚱'

입력
2023.07.14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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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 지원 놓고 서울시·기재부 대치
지방 물가 담당 행안부도 인상 못 막아
교통요금 인상, 물가 상승 부채질할 수도

13일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 버스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13일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 버스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서울시가 시내버스, 지하철 요금을 높이면서 '체감 물가'가 들썩일 조짐이다. 하지만 대중교통 요금 인상 과정에서 서울시는 물론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 역시 서민 부담을 낮추는 대안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공공요금을 누르면서 고물가를 잡는 데 한뜻이었던 중앙·지방정부가 균열을 내고 있는 모습이다.

대중교통 인상, 체감 물가 들썩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8월 12일부터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한다.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 역시 10월 7일부로 150원 오른 1,400원을 적용한다.

서울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지난해 말부터 예고된 일이다. 서울시는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등으로 서울교통공사 적자가 불어나자 기재부에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공익서비스손실보전(PSO) 사업을 통해 노인 무임승차 비용을 국비로 메우지 못할 경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기재부는 서울시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인 무임승차는 서울시가 지하철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해결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재정 자립도가 높은 서울시의 노인 무임승차 비용을 돕기보다, 재정 여력이 떨어지는 시군구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순위라는 판단도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와 기재부는 각각의 입장을 앞세우면서 평행선을 달렸고, 대중교통 인상폭을 줄이기 위한 해법 마련에는 소홀했다. 특히 기재부는 물가를 낮추기 위해 주요 품목 가격 인상을 적극 억제하던 모습과 비교해 경직적으로 대응했다. 기재부는 앞서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전기요금 인상을 제어했다. 또 라면 같은 민간 품목의 가격 인하를 압박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한은 "공공요금 더 오르면, 물가 조정"

물론 기재부가 지방정부 공공요금을 직접 제동 걸기 어려운 면을 감안하더라도 지방 물가 소관부처인 행안부와의 협업 역시 효과를 내지 못했다. 행안부는 '지방 물가 안정관리 추진실적 평가'를 통해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한 지자체에 특별교부세 지급 등 '당근'을 주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교통 요금 인상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제는 대중교통을 비롯한 공공요금 인상이 서울을 시작으로 지자체 전반에 퍼질 가능성이다. 벌써 경기도, 인천, 부산, 울산 등 지자체 곳곳이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확정했거나 계획 중이다.

동시다발적인 공공요금 인상이 현실화하면 21개월 만에 2%대(6월 2.8%)로 내려가면서 안정세인 물가도 위협받기 쉽다. 소비자물가 460개 품목 가운데 시내버스, 도시철도 가중치는 각각 7.4, 2.8이다. 두 품목을 더한 가중치는 10.2로 전체 품목 중 17번째로 높다. 요금이 뛰면 그만큼 물가에 끼치는 파장도 크다는 뜻이다.

물가 당국도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공공요금이 추가로 오른다면 물가 전망치를 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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