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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다, K기업가 정신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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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은 대한민국 재계에서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주요 그룹 창업자가 이곳과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LG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 동업 관계였던 GS 고 허만정 창업회장의 생가가 있다. 삼성 고 이병철 창업회장도 예외가 아닌데, 진주 허씨 가문의 허순구씨와 혼인한 둘째 누나(이분시)를 따라와 지수면 누나 집에서 보통학교(현 지수초)를 다녔다. 효성그룹 고 조홍제 창업회장도 생가는 경남 함안이지만 지수보통학교를 다녔다.
호사가들은 대기업 창업자의 밀집을 풍수지리로 해석하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경영학자들이 진주 지역에 뿌리내린 유교 전통에서 그 원류를 찾으려 하고 있다. 명분만 찾는 성리학 대신 실천주의 유학을 실현한 남명 조식 선생의 수기(修己)사상이 20세기 기업가 정신으로 이어져 K기업가 정신으로 발현됐다는 것이다.
지수면 출신 창업가들의 경영철학은 남명 사상과 공통점이 많다. 구 회장은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부터 (사업에) 착수하라'고 주문했고, 허 회장도 '돈은 의로운 곳에 크게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사업보국을 내세워 삼성을 일으켰고, 조 회장도 국리민복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모두 말만 조금 다를 뿐, '나를 다스려 공동체의 번영에 봉사한다'는 수기 사상의 실천을 경영목표로 삼은 셈이다.
남명의 사상에서 K기업가 정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학자들은 한국에만 있지 않다. 지난 10일 진주에서 개최된 '진주 K기업가 정신' 국제포럼에 참여한 47개국의 학자 등 500여 명 참석자들은 대한민국 1세대 창업자들이 남긴 기업가 정신을 한국 경제에서 대대로 계승되어야 할 '헤리티지'로 규정했다. 다국적 학자들은 K기업가 정신의 실체 파악에도 주력했다. 이들은 K기업가 정신의 원류인 '수기'가 자신과 다른 이와의 공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에 주목한 뒤, 이런 접근은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한 바와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애덤 스미스 정신과 유사하지만, K기업가 정신은 이기심을 넘어서는 철학적 바탕도 갖고 있다. 사람과 나라에 대한 미션을 중시하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서민에 대한 공감을 강조한다. 서양의 기업가 정신이 이기심과 경쟁을 강조한 반면, 우리 1세대 창업자들이 몸소 실천한 K기업가 정신은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이타심과 애국애민 사회를 위한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양에서 기업의 핵심 생산요소를 자원으로 인식한다면, 우리 창업자들은 핵심 생산요소를 사람으로 본 것이다. 요컨대 사업보국, 애국애민이 한국판 다국적 기업이 발현해온 혁신의 에너지인 셈이다.
문제는 1세대의 K기업가 정신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많은 학자들은 기적의 혁신을 만든 K기업가 정신이 K1 세대를 넘어 K2 세대로 K3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한다. K2, K3 기업가들이 사람이 아니라 돈을 추구하는 건 아닌지, 기업가 정신은 사라지고 관리자 정신만 남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영학의 구루(Guru)로 칭송받는 필립 코틀러의 모든 강의에서는 마지막 슬라이드 내용이 똑같았다. 그것은 "지금 하던 일을 5년 후에도 똑같이 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었다. 감히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탁하건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다른 이와의 공감을 통해 끊임없이 혁신했던 선대 창업자들의 정신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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