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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묻을 땅 없어 수천㎞ 해외로… 딜레마에 빠진 탄소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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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호주 최북단 도시 다윈에 도착하자 습하고 더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시드니, 멜버른 등 국내 주요 도시보다 인도네시아 발리가 더 가까운 열대 기후이기 때문.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우거진 숲과 끝없이 펼쳐진 티모르해 해변엔 늘 휴양객으로 붐빈다.
언뜻 평화로운 해안도시 같지만 '물밑'은 한시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티모르해에는 가스전과 유전이 있어 개발 작업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새로운 갈등도 더해졌다. 티모르해 한가운데 바유-운단 가스전을 이산화탄소 저장소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다. 호주 산토스, 한국 SK E&S 등 다국적 에너지 기업이 주관하는 사업이다.
2021년 본격 시동이 걸렸던 이 프로젝트는 그러나 현지인들의 필사적 반대로 현재 개점휴업 상태다. 탄소를 포집해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는 계획이 왜 반대에 부딪힌 걸까. SK E&S는 왜 수천 ㎞ 떨어진 곳에 탄소포집·저장(CCS)을 하려는 걸까.
바유-운단 프로젝트는 산토스가 추진하는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포함돼 있다. 채굴한 가스를 390㎞ 떨어진 다윈의 터미널로 보내 액화천연가스(LNG)로 정제하는 것까지는 여느 가스전 사업과 같다. 다른 점은 채굴 과정에서 포집된 탄소도 다윈으로 보냈다가 다시 500㎞ 떨어진 바유-운단 가스전에 저장하는 것이다. 저장 개시 시점은 가스전 고갈 이후인 2026년. 이 프로젝트는 산토스가 지분 50%, SK E&S가 37.5%, 일본 발전회사 제라가 나머지를 갖고 진행한다.
가스와 탄소를 수송하려면 다윈 앞바다에 수백 ㎞의 대형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현지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파이프라인이 선박 충돌 등으로 손상돼 가스와 탄소가 유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사업을 주도하던 미국 코노코필립스사가 2018년 호주 해안석유환경청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가스 유출이 현실화하면 티모르해 전역에 생태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파이프라인에서 6㎞ 떨어진 티위섬은 특히 큰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됐다.
티모르해에서는 이미 비슷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호주 최악의 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2009년 몬타라 유정 폭발 사고다. 당시 하루 400배럴(6만3,500리터)의 기름과 가스가 유출되면서 일대는 큰 피해를 봤다. 생계를 잃은 어민 1만3,000여 명은 집단 소송에 나섰다.
사고가 아니더라도 파이프라인 준설 과정에 환경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나이시 가웬 호주 노던준주 환경센터 활동가는 “다윈과 티위섬 주변 해역에는 듀공과 거북, 고래와 같은 멸종 위기 해양생물이 많은데 선박 통행량이 늘고 공사가 진행되면 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티위섬 원주민들은 사업을 멈추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환경영향이 큰 사업을 추진하는데 사전에 상의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다. 이들은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에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의 바로사 사업 투자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이후 산토스를 상대로 제기한 바로사 가스전 시추 계획 취소 소송에서 호주 연방법원이 원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업은 올해 초부터 무기한 중단됐다. 사업주들이 뒤늦게 설득에 나섰지만 원주민들은 단호했다. “티위섬은 이미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위험에 처해 있어요. 더 이상의 파괴로 우리 터전을 잃을 순 없습니다.”(원주민 안토니아 버크)
호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프로젝트에 회의적 반응이다.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이 포집량보다 많다는 근거 있는 의심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호주 지부는 지난해 이 프로젝트의 탄소배출량을 분석했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가스를 채굴해 정제하고, 포집한 탄소를 바유-운단 가스전에 저장하는 과정에서 연간 54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포집해 저장하는 탄소가 연간 230만 톤인데 그 두 배가 넘는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이다. 산토스가 환경컨설팅업체 ERM에 의뢰한 분석도 결과가 다르지 않다. 탄소배출 추정량은 연간 350만 톤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포집·저장량보다 많다.
이는 현재 기술로는 가스 채굴 시 발생하는 탄소만 포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제 과정에서도 탄소가 발생하지만 포집이 어렵다. 여기에 가스와 탄소를 운송할 때 드는 에너지를 포함하니 배출량은 더욱 커진다.
더욱이 LNG를 연소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천연가스 산업의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중 80% 이상이 난방, 취사 등으로 사용할 때 나온다. 산토스의 자체 추정에 따르면 사업을 25년간 운영할 경우 가스 소비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2억4,440만 톤에 달한다. 이 또한 탄소포집 기술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브루스 로버트슨 IEEFA 에너지금융 연구원은 “가스전에 연계된 CCS는 배출량의 극히 일부만 포집하지만 이 점을 자세하게 밝히지 않는다”며 “이렇게 생산된 가스가 한국으로 수출되면 결국 대부분의 온실가스는 한국에서 배출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SK E&S 관계자는 "시추 작업은 일부 차질이 빚어졌지만, 법원이 지적한 부분을 보완해 조만간 인허가를 재신청할 계획"이라며 "기타 공정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가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CCS로 전량 포집하고, 운송 및 재기화 단계 발생 탄소는 배출권거래제를 활용해 전량 상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 E&S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목적은 블루수소 생산이다. 블루수소란 LNG 등 화석연료를 개질해 만든 뒤 탄소를 포집한 수소를 말한다. 공정은 총 4단계다. ①호주 다윈에서 생산한 LNG 연 130만 톤을 충남 보령 터미널로 가져온다. ②보령에서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탄소를 포집한다. ③포집된 탄소를 액화한 뒤 다시 다윈으로 보내 임시 저장한다. ④이후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바유-운단 가스전으로 옮겨 액화 탄소를 저장한다.
보령 터미널에서 포집한 탄소를 티모르해까지 가져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국내에는 당장 쓸 만한 저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2021년 지질자원연구원 등 합동연구단은 국내 유망 탄소저장소 용량을 7억3,000만 톤으로 평가했다. 연간 2,400만 톤씩 30년 동안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이는 잠재량일 뿐이다.
유망 저장소 중 보령과 가까운 서해 군산분지는 저장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기초 탐사도 시작을 못 했다. 당초 지난해 가을부터 시추를 시작하려 했지만 인허가 절차와 기상 여건, 사고 등으로 1년 가까이 미뤄진 것이다. 그나마 사용가능 여부가 확인된 건 생산이 중단돼 비어 있는 동해가스전이지만 이곳도 2027년 하반기에나 저장이 시작된다.
탄소 감축이 급한 기업들은 해외 저장소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더 많은 탄소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호주 다윈과 보령의 거리는 5,441㎞. 해양환경공단의 탄소계산기에 따르면, LNG 1만 톤을 실은 운반선이 이 거리를 운항할 경우 1회 6만7,000㎏의 탄소가 배출된다. 해로에 따른 거리와 수송량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실제 배출량은 다르겠지만 탄소저장을 위해 탄소를 배출한다는 딜레마는 피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한국환경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 선박을 통한 탄소 수송 비용은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근해에 저장하는 것의 10배다. 보령-다윈 간 운송의 경우 톤당 약 100달러의 비용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집과 저장에 드는 비용, 그리고 타국의 저장소를 이용하는 데 따른 투자 비용은 별개다. 바유-운단 사례처럼 현지 수용성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감수해야 하는 비용도 있다. 다른 해외 저장사업들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CCS 계획은 해외 저장에 큰 비중을 둔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2021)의 A안은 2050년쯤 연간 3,880만 톤의 탄소를 포집해 저장한다는 것이다. 국내 저장이 3,000만 톤이고 나머지 880만 톤은 국외 저장소로 보내진다. 탄소포집의 비중이 커지는 B안은 국외 저장량이 2,960만 톤으로 늘어난다.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도 마찬가지다. 2030년까지 저장하기로 계획한 양은 연 480만 톤. 그런데 현재 유일한 대안인 동해가스전 저장 실증사업이 성공한다 해도 2030년 탄소 저장량은 연 120만 톤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의식한 듯 김상협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지난 3월 22일 브리핑에서 “앞으로 외교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탄소 저장할 곳을 찾아서 그 국가와 교섭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적 노력만으로 탄소 저장소 부족 문제를 풀기에는 복잡한 문제가 쌓여 있다.
우선 제도적 한계다. 런던 의정서, 폐기물 및 기타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방지에 관한 국가 간 협약은 이산화탄소의 수출을 금지해왔다. 해양 산성화 및 생태계 파괴 등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2009년 탄소저장 등 일부 요건에 한해 국가 간 협의가 이뤄질 경우 수출을 허용하는 개정안이 채택되면서 길이 열렸다.
문제는 개정안이 발효되려면 당사국의 3분의 2가 비준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87개 당사국 가운데 비준을 마친 곳은 한국 등 10개국뿐이다. 이 중 한국을 포함한 6개국은 개정안 발효 전이라도 탄소 수송을 잠정 허용하기로 선언했다. 그러나 호주, 말레이시아 등 한국 기업들이 눈여겨보는 저장소 보유국들은 잠정 허용은커녕 개정안 비준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해외 저장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공백 상태다. 아직 국가 간 저장 프로젝트가 시작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환경법센터의 스티븐 페잇 변호사는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탄소저장 프로젝트는 규모가 큰 만큼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한국과 호주 등 2개 국가 이상이 참여한 공동 저장소에서 누출이 발생한다면 어디까지가 각국의 책임이고 운용사 책임인지를 나누기가 매우 까다로워 분쟁 여지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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