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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로의 '권력이동', 아이폰이 이끄는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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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3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전화는 그리스어의 원격(Tele)과 음성(Phone)을 합친 말이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최초의 전화는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무치’가 발명했다. 그는 자석식 전화기를 발명한 뒤 특허를 내려고 미국 서부유니언전신회사와 의논했다. 문제는 회사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설계도도 잃어버렸다. 결국 인류 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미국 과학자 겸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게 돌아간다. 벨이 전화 발명으로 특허권을 취득한 걸 보고 무치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미국의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도 벨의 위치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레이는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하러 간다. 안타깝게도 벨보다 두 시간 늦게 특허 사무국에 도착한다. 단 두 시간 차이로 그들의 인생이 달라졌다. 벨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셈이다. 벨은 특허 신청 후 다음 달인 3월 7일 특허를 받았다. 이렇게 벨은 실용전화기를 처음 선보인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역사는 진정한 사람을 찾아 주는 정의의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2002년 6월 미국 의회가 무치를 최초의 전화 발명가로 공식 인정, 무치는 126년 만에 최초 발명가란 자리를 되찾았다.
벨은 공기 중에서의 복잡한 진동인 음성을 고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진동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 전선을 통해 전송하는 장치가 전화기다. 전화의 핵심은 인간의 음성을 전류로 바꾸고 전류를 다시 음성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먼 거리의 상대에게 음성을 전하는 전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음성을 전류로 변환하는 송화기, 전류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수화기, 전류를 흘리기 위한 전지와 전류를 전달하는 전선을 갖춰야 한다.
전화의 경제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플랫폼 경제에서 주장하는 네트워크 효과와 관련이 있다. 이는 1908년 벨 전화회사의 두 번째 최고경영자(CEO)였던 시어도어 베일에 의해서 이미 간파됐다. 그는 네트워크 연결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전화선의 반대쪽 끝에 다른 전화기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전화기는 과학도구나 심지어 장난감도 되지 못한다. 전화기의 가치는 연결과 그 연결의 증가에 있다.”
네트워크 효과는 어떤 상품의 소비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 품질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누군가의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로 인해 그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선 전화기에서 선을 없애고 자유로워진 휴대폰의 탄생을 살펴보자. 그 역할을 한 이는 ‘마틴 쿠퍼’다. 1973년 4월 3일 미국 뉴욕 거리에서 쿠퍼는 친구인 조엘 엥겔(미국벨연구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휴대폰 발명 소식을 알렸다.
“조엘, 나 마틴이야. 지금 자네에게 휴대폰으로, 즉 손으로 들고 다니며 쓰는 휴대용 폰으로 전화하고 있어.”
쿠퍼는 당시 모토로라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휴대폰 아이디어를 TV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얻었다. 우주인이 손에 들고 다니며 통화를 하는 ‘커뮤니케이터’를 보자마자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전화의 탄생을 꿈꿨다.
그는 연구 끝에 1973년 1㎏의 무게에 25㎝ 길이의 휴대폰 ‘다이나택(DynaTac)’을 선보인다. 다이나택은 ‘벽돌(the brick)’ 혹은 ‘신발(the shoe)’ 폰으로 불렸다. 20분간 통화하기 위해서는 10시간 동안 충전해야 했다. 결국 10년 뒤 무게를 절반으로 줄인(450g) 후에야 1983년 ‘다이나택8000x’라는 이름으로 상용화에 성공한다.
이후 휴대폰은 ‘휴대용 컴퓨터’로 진화했다. 최초의 스마트폰으로 꼽히는 휴대폰은 1992년 IBM에서 개발한 ‘사이먼(Simon)’이다. 큰 휴대폰의 단색 화면으로 계산기와 메모장, 전자우편, 팩스 기능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해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처음 개발될 당시에는 휴대폰을 만들던 회사가 아니라 PDA(일정관리나 이메일,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개인용 휴대기기)를 만들던 회사들이 PDA에 전화 기능을 추가해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면서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대명사는 애플의 아이폰이다. 아이폰이 정식 발매되기 전인 2006년 가을만 해도 애플 최고의 엔지니어 200여 명이 만든 아이폰 프로토타입(시제품)은 재앙 수준일 정도로 버그투성이었다. 전화는 계속 끊어졌고, 배터리는 충전이 되지 않았다.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도 작동을 멈추기 일쑤였다. 버그 리스트는 산더미같이 쌓여 고쳐야 할 게 가득한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는 불호령을 내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했다. 2006년 12월 중순 잡스가 아이폰을 시연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보아온 그 어떤 휴대폰보다 뛰어난 물건을 만든 데 대해 가슴 벅찬 환희를 느꼈다. 아이폰 프로젝트는 단순히 애플이라는 회사의 야심작만은 아니었다. 통신사업자 주도의 휴대폰 비즈니스에서 제조사와 개발자, 나아가 소비자가 우위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권력이동이었다. 애플은 소비자 중심의 세계로 진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업자든 한 번쯤 내렸을 결정을 엄청난 성공으로 연결시켰다. 웹이 등장하면서 정보가 컴퓨터 화면 속 소프트웨어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해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ww)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2004년까지 이어지는 웹 1.0 시대의 막이 열렸다. 웹 1.0 인터넷 시대는 웹페이지 제작자가 콘텐츠를 작성해 사용자가 정보를 읽기만 하는 일방향의 검색 탐색 위주였다. 1999년 닷컴 버블의 붕괴 이후 애플, 구글, 아마존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힘입어, 인터넷 벤처들을 중심으로 웹 기술과 인터넷 산업 전반에 대해 새롭게 고찰하기 위한 시도들이 '웹 2.0'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고 그 배경에는 모바일폰이 있었다. 모바일폰으로 우리의 삶은 더 편리해졌다. 웹 2.0 모바일 시대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트위터 등 플랫폼으로 사용자 간 정보를 주고받는 쌍방향의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됐다. 웹 2.0 시대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문제 되었고 해킹 위험에 노출되는 등 중앙집권적 폐쇄형 플랫폼에 따른 피해가 확산됐다. 사용자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용자 데이터 수집에 주력하면서 광고 중심 수익모델이 수입 대부분을 차지했다.
웹 3.0은 웹 2.0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의 독점과 이에 따른 피해가 세계적으로 골치 아픈 이슈가 됨에 따른 반동으로 나온 개념이다. 웹 3.0은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블록체인 시스템을 통한 탈중앙화와 데이터 암호화에 기초한 ‘개인의 데이터 소유’가 가능해진 새로운 형태의 웹 생태계를 뜻한다.
애플은 웹 2.0의 개방, 공유, 참여 및 협력 정신에 힘입어 큰 성공을 이룬 기업이다. 웹 3.0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애플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웹 3.0은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근간으로 하더라도 인공지능,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터넷 확장성 등 다양한 기술과 개념들이 결합된 새로운 웹의 패러다임이다.
이런 흐름 속에 애플은 지난달 30일 시가총액 3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2022년 1월과 올해 6월 28일 장중 3조 달러를 넘어선 적이 있지만 종가 기준 3조 달러를 유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애플의 몸값은 세계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순위로 비교하면 세계 7위에 해당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을 보며 기업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본다. 생태계 혁신이라는 임무에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고는 1등이 될 수 없다. 이 불황에도 애플의 장기적인 전망이 밝은 이유다. 애플의 실적은 앞으로 3~5년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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