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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는 선택의 제한이 아니라 확장이다

입력
2023.07.11 00:00
27면
ESG 기업. 게티이미지뱅크

ESG 기업.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내가 애용하는 상품을 만드는 회사가 알고 보니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면? 혹은 내가 투자한 회사가 이익은 많이 내는데 알고 보니 근로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고 있다면? 아니면 오너 일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면? 그래도 여전히 이 회사의 상품을 구매하고 이 회사에 투자해야 하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 위에 열거한 사항들이 명백한 불법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개인적인 상품 구매나 주식 투자의 문제가 아니라 법치주의 원칙의 문제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내려야 한다. 불법행위의 중단과 원상복구 요구는 물론이고 민형사 조치까지 취하고 심지어 영업정지나 폐업까지 명령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거나 교묘히 법망을 회피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온실가스를 엄청나게 배출하는 석탄발전소들은 배출권을 확보한 이상 불법은 아니다. 직원들을 괴롭히고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기업에 대한 정황 증거는 있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너 일가가 최고의 법률가들을 동원해서 편법으로 재산과 경영권을 승계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이들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규제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법적 근거가 없거나 아니면 있더라도 허술해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석탄 발전을 중단하자는 국가적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기업의 내부 인사나 영업방식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갑질이나 차별이 없는지 감시하기도 어렵다.

이런 경우에 소비자나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개인적인 성향과 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불법만 아니라면 소비자나 투자자들은 그런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은 일에 개인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고 존중되어야 한다. 반면에 정부가 못 하는 일이라면 뜻있는 개인들이라도 나서서 소비와 투자 결정에 반영함으로써 기업들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소비와 투자에 무엇을 고려할 것인지는 개인의 권리이므로 이런 의견 역시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요즘 일고 있는 ESG 운동은 바로 후자의 사람들의 선택을 돕고 활성화하자는 운동이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 기업들을 감시하고 평가하여 개인 소비자와 투자자들의 선택에 반영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고 ESG를 중시하는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의 선택을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 대한 기업 내부 정보들은 민간이 획득하기 어렵고 영업비밀에 속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보 공개에 대한 기준을 잘 정비하여 정제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민간에 제공하는 일은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여기까지에 그쳐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ESG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자의적이거나 중복적인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SG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확장하는 운동이지 선택을 제한하는 운동은 아니다. ESG를 소비나 투자에 반영하지 않으려는 부류의 사람들이나 ESG 관련 각종 평가자료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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