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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남친이 "죽이겠다" 해도 일본 경찰은 "어머니가 감독하라"고만 했다 [특파원24시]

입력
2023.07.09 15: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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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남성에 '구두 주의' 주고
마지막 신고 일주일 후 피살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소재 가나가와현경찰본부 전경. 구글 스트리트뷰 캡처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소재 가나가와현경찰본부 전경. 구글 스트리트뷰 캡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들어와 있었어. 얼마 전 집 열쇠가 없어졌는데, 그가 숨겨 뒀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거지."

여대생인 도미나가 사나(18)가 지난달 29일 일본 요코하마시의 집에서 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도미나가는 30분쯤 후 집 앞 주차장에서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인 모습으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약 2년간 사귀다 일주일 전에 도미나가와 헤어졌다는 이토 하루키(23)가 경찰에 자수했다. 이토는 "다시 사귀고 싶었지만 사나가 설득되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도미나가는 이토와 사귀면서 반복적으로 폭력을 당했고, 경찰에 네 차례 신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일 일본 FNN방송은 도미나가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경찰의 부실 대응을 폭로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요코하마시의 자택 앞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흉기로 살해당한 도미나가 사나(18)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지난달 29일 일본 요코하마시의 자택 앞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흉기로 살해당한 도미나가 사나(18)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경찰, 가해자 어머니에 "아들 감독 잘하라"

첫 번째 폭행 신고는 2021년 10월 도미나가의 친구가 했다. 이토가 도미나가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엔 이토의 집에서 싸우다 밖으로 도망 나온 도미나가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두 차례 모두 이토에게 말로만 주의를 줬고, 이토의 어머니에게 "아들 감독을 잘하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2월 세 번째 신고 때 도미나가는 "헤어지자고 했더니 이토가 목을 졸랐다. 헤어지면 죽인다고 협박당했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이토를 체포하거나 직접 조사하지 않았고, 신고 이후 도미나가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데 그쳤다. 1개월 후 도미나가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고 경찰에 알렸다.

도미나가가 살해당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2일 네 번째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이토에게 주의를 주고 양쪽 부모를 불러 서로 대화하도록 했다. 도미나가는 "거주지를 옮기는 게 좋겠다"는 경찰의 권고를 듣지 않았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했지만 이토는 포기하지 못했다. 도미나가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불쑥 찾아가기도 했다.

범행 전날 이토는 몰래 빼돌린 열쇠로 도미나가의 집에 무단 침입했다. 도미나가의 부모가 타일러서 내보냈으나, 이토는 집 밖에서 도미나가가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 대응에 대한 평가 엇갈려

경찰의 대응에 대한 일본 전문가의 평가는 엇갈린다. 교토산업대학 다무라 마사히로 교수는 "경찰이 법적으로 가능한 범위의 대응을 다했다"고 말했다. 반면 반 아쓰코 변호사는 아사히신문에 "성인인 이토의 부모에게 '자식을 잘 감시하라'고 하는 게 실질적 해법이 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사귀는 중이거나 헤어진 연인·배우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교제 폭력'은 19년 연속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상담 건수는 전년 대비 1.8% 증가한 8만4,496건이었다. 이 중 폭행, 상해 등 형사 사건으로 접수된 건 8,581건에 그쳤다. 교제 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인 '임파워먼트 가나가와'는 "피해자는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인지하기 어렵고, 오히려 자기 잘못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며 "연인 당사자 간의 문제라고 생각지 말고 주변에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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