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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부터 국가가 보호...더는 '생일 없는 아이' 없어야"

입력
2023.07.09 07:00
수정
2023.07.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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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변호사 인터뷰
"출생통보제, 태어나는 순간 국가가 보호 신호 포착"
"미등록 이주 아동 등 보편적 출생 등록 과제 많아"
귀 닫았던 국회도 미등록 아동 책 "230권 주문"

김희진 아동 인권 변호사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4년 전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출생 미등록 아이 문제를 다룬 '아동인권'을 출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생일 없는 아이들'을 냈다. 남보라 기자

김희진 아동 인권 변호사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4년 전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출생 미등록 아이 문제를 다룬 '아동인권'을 출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생일 없는 아이들'을 냈다. 남보라 기자


"더는 생일 없는 아이를 만들지 말라. 누구나 축하받는 그 기쁨이 일상에서 지켜졌을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희진 변호사



지난 8년간 출생신고 되지 않은 '유령 아동' 2,236명. 지난달 정부의 정기 감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처음 밝혀졌을 때 김희진(36) 아동 인권 전문 변호사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정확하게 그가 아동 인권을 위해 '출생통보제' 입법화를 위해 나섰던 시기와 겹쳤다. 그는 2015년 인권단체 등 20여 곳이 연대해 만든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에 참여해 아동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지난 5일 만난 김 변호사는 "정부가 가진 데이터로 (유령 아이들에 대한) 추적이 가능했는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가장 화가 났다"며 "지난 8년 간 출생통보제를 도입하자고 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은 대가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치렀다. 지난달 수원에서 영아 2명이 잇달아 목숨을 잃고 냉동고에 유기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유령 아이들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전국 각지에서 출생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동' 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김 변호사에 미신고 아동 문제 해법을 물었다.


-‘출생통보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초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 방을 다 돌았지만 '이런 민생법안은 다루기 여의치 않다'고만 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빨리 통과시킬 수 있었는데, 지난 8년 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이제라도 통과돼서 다행이다."

-일찍부터 출생통보제 도입을 주장한 이유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해야 된다'고 돼 있다. 유엔이 2011년 처음 한국에 출생등록제도를 이행하라고 권고했고, 2015년 아동 인권 관련 단체 20여곳이 연대해 보편적출생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아동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어 변호사가 됐지만 사실 저도 아동 인권에 대해 잘 몰랐다. 2015년부터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일하며 처음 아동 인권에 대해 알게됐고, 출생통보제의 중요성도 그 때 깨달았다."

-출생 미신고 아이 사례는.

"제가 활동하면서 도운 미신고 아이들은 주로 혼인 외 출산이었다. 이혼 후 300일 이내 출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혼인 외 출산은 혼외자 자녀 등을 말한다. 남편에게 말 못할 사정이 있거나 가정폭력 피해자인데 전 남편에게 연락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출생신고를 하기 어려웠던 경우다. 이번에 밝혀진 출생 미신고 아동 2,236명 중 100~300명 정도는 혼인 외 출산일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미등록 이주아동(미등록 외국인이 국내에서 출산한 아동)이라서 출생신고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7회 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재적 267명 중 찬성 266명으로 압도적인 찬성율 통과됐다. 수원에서 냉동고 영아 시신이 발견된 지 9일 만이다. 뉴스1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7회 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재적 267명 중 찬성 266명으로 압도적인 찬성율 통과됐다. 수원에서 냉동고 영아 시신이 발견된 지 9일 만이다. 뉴스1

-출생통보제 도입되면 미신고 아이 줄어들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출생통보는 의료기관이 태어난 아이를 국가기관에 알리는 것이고, 출생등록은 국가가 하는 거다. 지방자치단체가 생후 한 달 내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의 부모에게 신고를 독려하고, 그래도 안 하면 직권으로 출생 등록을 하는 거다. 지자체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한 규정은 2016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올 초 청주에서 산모가 사망한 후 남편이 혼인 외 아이라며 출생신고를 거부한 사례에서 보듯 지자체가 부모 대신 출생신고를 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민원을 감당하면서 직권으로 출생을 등록할지 좀더 디테일한 지침이 만들어져야 현장에서 적용가능할 것 같다는 우려도 든다."

-지자체 등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해보인다.

"그렇다. 또 다른 문제가 지자체 내 아동 보호 부서와 출생 등록 부서가 각각 따로 있다. 부서가 달라 정보 공유가 안 된다. 실제로 학대 피해 아동 중에 출생 신고 안 된 아이들이 있는데도 등록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출생 정보를 통보받은 공무원들이 타 부서와 협력해 아동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족관계 등록 업무를 처리하는 것까지 다 아울러 협력할 수 있게 안내서와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출생통보제 도입 의미는.

“출생통보제의 가장 큰 의미는 국가가 부모의 출생신고 유무와 상관없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신호를 포착한다는 거다. 한 달 내 출생신고가 안됐다면 아이는 안전한지, 가정에 위기는 없는지 들여다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신고하지 않는 부모를 비난할 게 아니라 그 가정의 어려움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거다. 혼외자, 한부모 자녀 등 편견을 넘어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하기 위한 첫 출발로 이해되면 좋겠다."

-남은 숙제는.

“출생통보제는 시작일 뿐이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출생통보제 대상은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등록번호가 있는 아동만 대상으로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통보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족관계등록법이 대한민국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아동 출생 등록도 필요하다. 또 혼인 외 출생의 경우 법률상 아버지가 추정되는 경우에 신고 대상에서 누락되지 않게 하는 제도적 개선도 논의돼야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김 변호사가 지난해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출생 미등록 사례와 국가 책임에 대해 쓴 '생일 없는 아이들' 230부를 국회에서 주문했다는 소식을 출판사 대표가 전한 거였다. 이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더는 생일 없는 아이를 만들지 말라. 누구나 축하받는 그 기쁨이 일상에서 지켜졌을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희진 변호사는 5일 인터뷰 도중 출판사 대표로부터 "국회 부의장이 '생일 없는 아이들'을 230권 주문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김 변호사가 지난해 5월 출간 직후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 한 권씩 보냈을 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책이다. 김 변호사 제공

김희진 변호사는 5일 인터뷰 도중 출판사 대표로부터 "국회 부의장이 '생일 없는 아이들'을 230권 주문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김 변호사가 지난해 5월 출간 직후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 한 권씩 보냈을 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책이다. 김 변호사 제공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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