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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이’와 형-동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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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 사회에선 호칭 정리가 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OO야’로 할지 ‘OO씨’로 할지 혹은 ‘OO형(누나, 언니, 오빠)’이라 할지 애매해 호칭 자체를 주저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거리감이 있다. 초면에도 나이와 학번을 묻고 후다닥 서열부터 정리하는 건 그래서다. ‘OO씨’에서 ‘OO야’로 바뀌는 순간, 두 사람의 친밀도는 몇 배 치솟는다.
□태어난 연도에서 시작된 서열은 살면서 몇 차례 흔들린다. 초등학교 입학 시 1, 2월생은 ‘빠른 OO년생’으로 분류되며 전년도에 출생한 이들과 친구가 된다. 대학에 들어가면 현역과 재수생, N수생들이 뒤섞이면서 호칭 정리에 날을 세운다. 누구는 형-동생으로 정리했는데, 누구는 친구로 지내기로 하면서 3명이 모이면 관계가 어색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직장 입사로 서열은 또 한번 흔들린다. 군 복무 등으로 입사가 늦어지면 학번으로 굳건했던 형-동생 서열이 뒤집힐 수 있다.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면서 ‘연 나이’ ‘세는 나이’가 사라지고 생일을 지나야만 한 살 더 먹는 ‘만 나이’로 통일됐다. 조금이라도 젊어지고 싶은 성인들이야 육체적으로야 달라진 게 없어도 공식 나이가 한두 살씩 적어졌으니 반길 일인데, 젊은 친구들에게는 상당히 예민한 구석이 있다. 같은 학년임에도 생일이 지났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이가 한 살씩 차이가 나서 그렇다. 친구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인터넷에 글들이 적지 않다.
□형-동생 문화, 그에 따른 존대-하대 문화가 여전한데 ‘만 나이’ 통일이 실생활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몇 분 차이 쌍둥이조차 형-동생을 엄격히 따질 정도로 서열이 중요한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한국식 ‘세는 나이’를 기준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 생일 전에는 친구였다가 생일 후에 형으로 바뀔 수는 없으니 그렇다. 김미경 대덕대 명예교수는 ‘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에서 한국의 선진국 행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존대-하대법을 꼽는다. 어려서부터 위계질서와 서열에 길들여지니 열린 소통을 더디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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