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엄마들을 위한 응원

입력
2023.07.08 00:00
22면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김규진·김세연씨와 킴·백팩씨 동성커플이 1일 결혼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제공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김규진·김세연씨와 킴·백팩씨 동성커플이 1일 결혼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제공

결혼 후로 아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특히 결혼 예정이거나 기혼 상태인 여성 지인들은 임신 여부를 고민 중인 경우가 많아 이런 이야기를 좀 더 자주 나누게 된다. 나는 확고한 딩크족까지는 아니지만 낳고 싶지 않다는 쪽에 가까운데, 이 상황이 온전히 내 선택에 의한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 지금은 나의 결정과 남편의 합의로 무자녀 상태를 유지하지만 어떤 계기로 남편과 내게 육아에 대한 의지가 생겨 아이를 갖기로 한다면, 언제든 출산이나 입양 같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한 아이와 무난하게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내게 '갖는다-갖지 않는다'의 두 가지 선택지로만 이루어진 이 단순한 문제는 동시대 한국의 어떤 여성들에게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조차 쉽지 않은 일생의 난제가 된다. 바로 정자 기증을 통해 비혼 출산을 원하는 싱글 여성이나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동성 커플이다. 국내에서 정자 기증을 통해 임신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대개 난임인 법률상의 부부, 또는 사실혼 관계인 이성 부부뿐이다. 저출생의 사회적 위험을 강조하며 이성애자 기혼 여성에게는 비출산에 대한 죄책감을 심고 난임 치료비까지 지원하겠다는 국가가 전통적 '정상 가족' 밖의 여성에게는 임신 기회조차 주기 꺼려한다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여러모로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고려 대상에서 완벽하게 배제돼 왔기에 당사자가 아니라면 허점을 인지하기도 어려울 수 있었지만, 이 문제는 그럼에도 돌파구를 찾아 아이를 갖는 데 성공한 엄마들에 의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16년 전 비혼 싱글맘임을 처음 공표했던 방송인 허수경씨를 비롯해 일본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출산한 사유리씨,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 동성부부 최초로 아이를 갖게 된 김규진·김세연씨 부부까지. 우리가 뒤늦게 깨달은 '모든 여성의 출산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모두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렇게 촉발된 논의에 힘입어 지난 5월 드디어 비혼 출산지원법을 포함한 가족구성권 3법이 발의되었지만, 동성 부부와 비혼모 등 이른바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가정들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일부 정치인과 보수단체들은 생활동반자법과 비혼 출산지원법에 대해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표하고, 가장 최근에 임신 사실을 밝힌 김규진씨 부부의 기사 댓글 창만 봐도 비난과 욕설이 적잖이 쏟아진다.

이토록 위협 요소가 많은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해 엄마가 된 용감한 여성들을 존경한다. 이들이 성취한 '엄마'의 지위는 한국 사회의 가정 형태를 다양화하는 일에,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권리'를 모든 여성이 동등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들은 남들과 같은 이유로 아이를 원했지만 그 선택을 위해 남들보다 더 큰 용기를 내야 했다. 그 아이가 가정 밖에서 상처받지 않고 자랄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이제 국가와 사회의 몫이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엄마가 된,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될 당사자들에게는 더 씩씩해지라기보다는 가장 평범한 언어로 된 축복을 보내주고 싶다. 이들의 가정이 이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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