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스트의 연주에 매료됐다, 악기의 매력에 빠졌다

입력
2023.07.10 10:00
20면

무대 넓히며 관악기 아름다움 알리는 김유빈·조성현·함경·김홍박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한국일보 자료사진

플루티스트 김유빈. 한국일보 자료사진

2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뛰어난 솔리스트는 나올 수 있지만 뛰어난 오케스트라는 탄생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개인이 돋보일 수 있는 악기에만 관심이 높지 목관, 금관 등 덜 주목받는 분야에서는 좋은 연주자가 나오기 어렵고, 결국 악기에 따른 실력 차이 때문에 좋은 오케스트라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였다.

다행히 그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현재 세계적인 교향악단에서 악장은 물론 관악 파트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목관 파트의 수석 연주자는 오케스트라의 일원인 동시에 악단의 음색과 수준을 결정하는 솔리스트다. 이들의 존재는 메이저리그 최고 팀의 투수나 4번 타자 혹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스트라이커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을 거쳐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종신 수석으로 활동했던 플루티스트 조성현은 연세대 교수로 정착하면서 국내 활동이 많아졌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고잉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구성과 운영에 중심 역할을 해 왔던 그는 다양한 각도에서 플루트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최근 문정재 재즈 트리오와 함께한 클로드 볼링의 '플루트와 재즈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 전곡 연주회가 인상적이었다. 피아노, 클라리넷, 더블 베이스처럼 플루트 역시 재즈에서 중요한 악기다. 재즈 주법으로 연주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교향곡에서는 잘 알 수 없던 플루트만의 매력이 잘 전해졌다. 객석에서는 "연주를 듣고 행복해졌다"는 얘기가 이례적으로 많이 들렸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한국일보 자료사진

플루티스트 조성현.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직 20대지만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종신 수석 단원인 김유빈의 최근 활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2년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아 객원 수석으로 세 차례 연주회를 가진 그는 이미 뛰어난 프로 연주자지만 지난해 참가한 독일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세계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는 섭외 1순위 연주자임을 재확인시켰다. 8일 예술의전당 공연에 이어 10일 명동성당에서는 나무로 된 플루트, 바로크 시대 악기인 하프시코드, 비올라 다 감바와 함께 바흐, 헨델, 텔레만의 작품을 연주한다. 플루트는 목관 악기 군에 속하지만 악기가 금속으로 만들어지게 된 배경, 바로크 시대 플루트에 얽힌 이야기와 주법 차이, 무엇보다 이 연주자가 어떤 음악으로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했는지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보이스트 함경. 금호문화재단 제공

오보이스트 함경. 금호문화재단 제공

목관 악기와 바로크 시대의 진한 연결 고리는 오보이스트 함경의 활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아카데미 단원으로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거쳐 현재 북유럽 최고로 꼽히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종신 수석 오보이스트인 그는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등 세기의 거장들과 한 무대에 서 왔다. 다음 달 독주회를 앞두고 있는 함경과 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플루티스트 조성현은 듀오 앨범 '바흐'(Decca·데카)를 선보인다. J.S.바흐와 그의 두 아들 W.F.바흐, C.P.E.바흐의 작품을 담아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목관 악기의 매력을 알리는 것인데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 곡으로 오보에 음색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라면 함경의 음악 세계를 통해 레퍼토리의 외연을 넓혀 보는 것도 좋겠다.

호르니스트 김홍박. 금호문화재단 제공

호르니스트 김홍박. 금호문화재단 제공

교향곡의 한 파트로서 들어 왔던 악기를 리사이틀에서 만나면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게 많다. 교향곡을 연주할 땐 베토벤이 돼야 하고 브람스의 작풍 안에서 호흡해야 한다. 하지만 각 악기를 위해 전문적으로 곡을 쓴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어 보면 악기만의 개성과 미처 알지 못했던 기량, 음색, 다양성, 스타일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악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작곡가들의 계보를 별도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데, 금호문화재단이 기획한 호른 연주자 김홍박의 리사이틀에서 뮌헨 필하모닉 호른 수석이었던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와 아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함께 만나 보는 것도 근사하겠다. 오슬로 필하모닉 호른 수석인 이 뛰어난 호르니스트가 선보일 무대를 통해 모르는 곡, 낯선 악기와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꼭 해 봤으면 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교향악 무대를 더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동시대에 이렇게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은 새로운 악기와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객원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