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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좋은' 초복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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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초복(7월 11일)을 시작으로 중복, 말복이 이어진다. 삼복더위라는 말이 있듯 이 기간이 연중 가장 무더운 한여름이다. 복날을 일컫는 엎드릴 복(伏)자는 사람 인변에 개 견(犬)자가 들어간다. 개가 사람에게 엎드려 복종함을 나타낸다거나 더우면 사람도 개처럼 늘어져 엎드린 모습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그저 사람 옆에 엎드린 친근한 개를 나타낼 뿐이라는 풀이도 있다. 복날에 보양식으로 개장국을 먹던 풍습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伏자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유래는 다르지만 영어 'dog days'를 비롯해 여러 유럽 언어도 가장 더운 철을 '개의 날'로 나타내는데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번역어로,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가 태양과 함께 뜨고 지는 때를 일컫는다. 이 밖에도 '개'는 여러 언어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여 준다.
접두사 '개-(개살구, 개나리 따위)'가 동물 '개'와 무관하다는 일설과 달리, 명사 '개'가 접두사로 문법화됐다는 게 일반적인 학설이다. 접두사 뜻 자체가 '개'가 아닐 뿐 어원은 이어진다. 가장 흔한 가축의 이름이라서 일어난 의미 악화다. '층층나무(열매)'의 뜻인 영어 dogberry, 독일어 Hundsbeere, '개여뀌'의 뜻인 일본어 いぬたで(이누타데)도 개(dog도그, Hund훈트, いぬ이누)를 질이 낮거나 식용에 부적합한 야생 식물을 일컫는 접두사로 쓴다. '개새끼'도 '개'와 무관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으나, 영어나 러시아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처럼 '개의 새끼'를 뜻하는 합성어가 욕으로도 쓰이는 것뿐이다.
영어 dog-, 독일어 hund-는 부정적인 강조 접두사로 종종 붙어, '매우 피곤하다'의 뜻인 dog-tired, hundemüde 같은 말도 옛날부터 썼는데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 들어 생긴 '개피곤'과 뜻과 얼개가 같다. 영어나 독일어와 달리 최근 한국어 입말에서 강조의 '개'는 사용 범위가 더욱 넓다.
긍정적 용법의 접두사 '개'는 부사(개좋다)나 관형사/형용사(개이득)처럼 여길 만도 한데, 어원은 기존 접두사와 관련지을 수 있다. 야생(개살구)→질 나쁜(개떡)→쓸데없는(개꿈)→심한(개망신)에서 심하게 안 좋은 것이 심하게 좋은 것으로 전용된 셈이다. 21세기 한국어 접두사 '개' 같은 긍정적 용법은 딴 언어에는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개'는 아마도 또 다른 한국형 접두사 K(케이)와의 만남을 예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복날'의 정의에 '이날이면 그해의 더위를 물리친다 하여 개장국이나 영계백숙을 먹는 사람이 많다'라 쓰고 있다. 반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그런 부연 설명이 없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인의 생활 습관이나 의식이 바뀌며 '도둑고양이' 대신 이제 '길고양이'로 부르듯 개도 이제 애완동물을 넘어 반려동물의 지위까지 올라갔기에 그런 변화도 반영했을 것이다.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도 늘 테니 '복날 개 패듯' 같은 관용구도 설 자리가 슬슬 줄어들 것이다.
개는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라서 이렇듯 언어에도 깊이 뿌리박혀 있으면서도 시대가 흐르면서 조금씩 변모했다. 어떡하면 사람도 살기 좋고 개도 살기 좋고 모두 살기 좋은 개좋은 세상으로 개조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 곰곰이 궁구하고 차근차근 실천에 옮긴다면 개더운 여름도 더욱 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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