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엮이는 순간 국내 정치문제로
정파적 이해 앞에서 과학은 별무소용
감성 접근, 감시 방안까지 포괄방책을
“다핵종처리설비(ALPS)에 문제가 없고, 삼중수소도 장기간 해류에 희석되므로 오염수 방류 영향은 없다.” 2년 전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에 대해 전 정부가 합동 TF를 통해 낸 결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방류결정에 반대 입장을 냈다.) 지금은 180도 바뀌었다. 그 과정에 어떤 중간단계도 없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보고서로 가닥이 잡히리란 기대는 처음부터 접었다. 우리 학자까지 포함된 11개국 전문가가 2년간 진력한 연구결과는 예상대로 간단히 무시됐다. IAEA의 결론을 존중하겠다는 입장 역시 전 정부 때부터다. 그런데도 원자력 안전에 관한 한 최고 권위를 인정받아 온 IAEA는 일본의 하수인 이미지로 추락했다. IAEA 사무총장이 우리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추가논의를 한다지만 애먼 우리 과학자들마저 정부에 영합하는 부역자로 찍힐 분위기다.
이 기막힌 전도(轉倒)의 원인은 딱 하나다. 국정의 책임주체가 바뀐 것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애당초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질적으로 정파적 이해의 문제였다는 말이다. 여기서 진실은 대수롭지 않다. 더욱이 소재가 일본이다. 일본과의 문제는 뭐든 정치적 가성비 좋은 국내문제로 치환된다. 중국 해안에서 훨씬 많은 삼중수소가 방류된들 개의치 않는 건 정치적으로 득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일상적 갈등구조다.
과학적 소양은 부족해도 종합 판단할 만한 근거들은 넘치게 나와 있다. 핵종, ALPS, 세슘, 삼중수소 따위의 어려운 과학용어를 이해하느라 애쓸 것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당시 쓸려 나간 그 막대한 방사능 물질이 지금껏 우리 바다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다. 12년이면 당시의 오염수가 태평양을 몇 번이나 돌고 도는 기간이다.
오해 말기 바란다. 일본이나 현 정부를 편들자는 게 아니다. 과학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 사회 갈등사안에서 과학적 접근만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광우병의 객관적 병인(病因) 분석이나 감염통계도 광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고, 천안함 때 스웨덴 미국 영국 캐나다의 국제전문가 수십 명이 만장일치로 북한 어뢰의 소행으로 결론 냈어도 온갖 비전문가들의 요설을 이겨내지 못했다. 세월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작위적인 조어(造語)에 거부감이 있지만 이 사안에 굳이 만들어 붙이자면 3S쯤 될 것 같다. 과학(Science)·감성(Sensibility)·감시(Surveillance)다. 셋 중 어느 하나에도 소홀함 없이 포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한 비이성이 횡행하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어렵다. 과학적으로야 현 수준 이상 설명하기 어렵지만 감성적 접근 노력은 확실히 더 필요하다.
필요한 자료를 일본에 충분히 요구하고 단계마다 당당하게 참여를 주장해야 한다. 핵심은 절대로 일본을 편든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독도나 교과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등 여타 문제에는 원칙적인 대응이 필수다. 오염수를 우려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공동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이상이 발견될 땐 언제든 원점 재검토도 불사하겠다는 열린 태도도 견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 사안은 정치적 쓰임새가 다하면 소멸되게 돼 있다. 이전 괴담, 음모론들이 다 그랬듯. 결국 시간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때까지 치러야 할 민생 피해와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과학을 넘는 포괄적 대응을 통해 소모의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지 여부에 현 정부의 앞날이 달렸다.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의 이 질긴 후진적 논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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