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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할 타자의 한국전쟁

입력
2023.07.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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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가보훈부가 지난달 30일 '7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한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 시절 모습. 국가보훈부 제공

국가보훈부가 지난달 30일 '7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한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 시절 모습. 국가보훈부 제공


한국전쟁 휴전 협상으로 소모전이 벌어지던 1953년 2월 16일 포항기지에서 평양 인근 출격에 나섰던 미군의 F9F 팬서 전투기가 수원기지 상공에 나타났다. 북한군 기총소사에 전투기는 만신창이가 돼 복귀하던 길이다. 연료통에선 기름이 새고, 랜딩 기어도 작동하지 않았다. 계기판마저 작동불능. 조종사는 편대 전투기의 유도를 받아 바퀴조차 내리지 못한 채 동체 착륙을 시도할 참이었다.

□동체 바닥이 활주로에 닿자마자 새 나온 항공유와 마찰열로 전투기는 화염에 휩싸였고 600여 m 미끄러진 뒤 멈췄다. 황급히 탈출하는 조종사를 보고 기지 사람들은 "행운아"라며 환호했다. 미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미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해 첫 출격에서 산화할 뻔했지만, 기적같이 생환했다. 발목만 삐었다. 그는 후에 "전투기 전체에 구멍이 뚫렸고, 동체가 지옥처럼 불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음 날 또 출격 명령을 받아 평양 인근을 날았다. 참전 기간 39차례 출격해 3차례 기체에 총격을 맞았다고 한다.

□테드가 한국전 참전을 원했던 건 아니다. 세계 2차대전 시기 소집된 뒤 비행교관 등으로 3년여를 국내에서 복무했다. 군을 다녀온 성인남자가 한동안 꾸는 악몽이 그에겐 현실이 됐다. 미국은 2차대전 승전 후 병력을 대폭 축소하는 바람에 한국전엔 예비군까지 동원했다. 해병 예비역인 그에게 52년 5월 동원명령이 내려지자 가족 부양을 이유로 탄원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현역인 줄 몰랐던 해병대 행정관의 실수라는 설도 있다.

□출격 과정에서 얻은 내이염과 폐렴으로 그는 53년 6월 비행기 조종 불가 판정을 받았고, 정전협정 체결 하루 뒤인 7월 28일 제대했다. 바로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그는 37경기에서 4할 타율을 기록했다.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75명의 동료 대원이 나보다 더 나은 조종사였습니다.” 2002년 타계 후 미 해병대 추도사를 보면 그는 누군가 공적을 추켜세울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고의 조종사로도, 인품으로도 국가보훈부가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할 만하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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