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누군가가 부러울 때 떠올린 것

입력
2023.07.06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주도란 무엇인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제주도에 산다는 것만으로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니 말이다. "제주도 사니까 좋지? 부럽다!" 사람들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부러워한다. 제주도란 관광지이기에 얼마간 이해하지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지 않나, 한편으로 퍽 억울한 데가 있다. 또, 책방이란 무엇인가. "나도 나중에 책방이나 하면서 살고 싶어!" 좋아하는 책과 나의 손길이 가득 찬 공간을 꾸리고 지속하는 경험, 물론 멋지고 재밌어 보일 수는 있겠다. 그런데 책방이면 책방이지 책방'이나'는 뭔가. 턱을 괸다. 쉽고 편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일까. 부러움이란 무엇인가.

제주도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말이 있다. 바로 '부럽다'라는 말이다. 부럽다는 말을 들어오며 떠올린 상념이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 보인다는 뜻일 테니 칭찬이라고 여기며 "감사합니다" 대답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미묘한 차이로 그 말이 불편할 때가 있다. 도대체 왜 불편하기까지 한 것인지 마음이 복잡하던 중, 한 작가가 제주에서 잠시 지낼 때 써낸 한 대목에 깊이 공감했다. "부러움을 살 만큼 특별하거나 안정된 날을 보내고 있지 않은데도 부러움을 받으면 나만 삶의 어둠을 모르는 철부지가 된 것만 같아진다. 그 말을 하는 대신 내가 가진 삶의 나쁜 점마저도 떠안겠느냐고 묻고 싶다." (송재은, '오늘보다 더 사랑할 수 없는') 그렇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보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태도에서 비롯된 '부럽다'는 어쩐지 좋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부러움에 관한 기억 하나. 중학생 시절 수영을 잘하는 친구를 따라 무작정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 당시 수영 경력이 몇 년쯤 된 친구는 상급반에서도 상급이었고, 나는 이제 막 초급반에서 발차기를 배우고 있었다. 삐걱대는 나와는 달리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는 친구가 부러웠다. 자유형 팔 돌리기를 배우던 어느 날, 팔과 고개를 돌리며 수면 위로 숨 쉬는 연습을 하다가 한없이 의아해졌다. '어떻게 이 자세로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거지?' 아무리 연습해도 가라앉기 일쑤였다. 답답함에 친구에게 어려움을 토로하자 친구는 내게 한번 자기 앞에서 해 보라고 했다. 내 몸짓을 몇 번 보던 친구는 무언가 잘 말해주려고 입을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가장 최선의 말을 찾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계속하다 보면 될 때가 있을 거야." 그러고 유유히 다시 자신의 헤엄을 치러 갔다.

그건 당시엔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수영을 곧잘 하게 된 지금은 안다. 배운 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건 금방일지 몰라도 몸이 익히기까지는 오래도록 연습해야 한다는 사실.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스스로 해내야 한다. 이제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봐도 부럽지는 않다. 더 정확히는, 부러워하기엔 염치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그만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저만큼의 실력에 도달했을 것이니. 누군가의 결과만을 욕심내면서 게으르게 질투하는 대신 과정을 고찰하며 나만의 속도로 잘 가보자고 다짐할 뿐.

누구에게나 각자의 세월과 사연이 있기 마련이라 타고난 조건 같은 것도 부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밥 세 끼 안 굶고 건강한 것만 해도 아주 감사할 일 아닌가. 부러운 마음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에 누릴 수 있는 걸 차근차근 해 볼 참이다.


김예진 북다마스 대표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