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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유죄, 상담은 무죄? '베이비박스 유기' 법원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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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아'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교회 등이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의 불법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지금까지 법원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오면 영아유기로 보아 그 부모를 대부분 처벌했다.
그러나 지난해 첫번째 무죄 판결이 나온 이후, 법원 판결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 게 사실이다. 다만 현행법상으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오는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될 여지가 많아, '위탁'과 '유기'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6일 한국일보가 분석한 영아유기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5년 동안 진행된 총 13건의 베이비박스 유기 사건 재판 중 12건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민간 단체들이 '공식 보육기관'이 아닌 만큼 이를 유기로 봐야 한다는 원칙적 법 해석을 고수한 것이다. 현행법은 영아를 '보호 없는 상태로 옮겨 놓거나 생존에 필요한 보호를 하지 않을 경우' 영아유기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재판부는 양형 사유에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방식으로 베이비박스의 '실질적 보호 기능'을 일부 인정했다. 국가가 공인한 보호 자격은 없지만, 베이비박스 운영자의 '도움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에 해당하기에 그냥 아이를 버리는 행위와 똑같이 처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열악한 형편과 가족 관계, 아이 부친과의 연락 두절 등 생모가 처한 각종 사회·경제적 상황도 집행유예 선고의 이유가 됐다.
베이비박스 유기 사건 가운데 무죄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창모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베이비박스 운영) 교회에 항상 사람이 상주했고, 생모인 A씨도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서 아이들을 맡긴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베이비박스 운영자와의 '상담' 여부가 유기와 위탁을 가르는 법적 기준이라는 취지다. 이 판결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생모가 아이의 이름이나 출생시각 등이 담긴 쪽지를 두고 가는 등의 행위는 상담과 달리 적극적 위탁 의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울산지법은 가정 형편상 양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베이비박스에 쪽지와 함께 아기를 두고 온 생모 B씨에게 "영아의 생명, 신체에 위험을 초래했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아유기의 고의나 취지 등을 따진 대법원 판례가 아직 없는 만큼, 재판부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A씨 사건 변호를 맡았던 연취현 변호사는 법원이 베이비박스에 대해 좀 더 유연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연 변호사는 "보호 대상자를 보호 없는 곳에 두는 게 유기인데, 베이비박스는 실질적으로 보호가 명확히 있는 곳"이라며 "쪽지나 상담 등의 행위가 없었더라도, 이러한 곳에 아기를 뒀다면 묵시적 보호 위탁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는 박스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벨이 울리는 구조다. 아기가 왔다는 사실을 운영자들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법조계에선 '묵시적 의사'를 일률적으로 인정할 때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의 신수경 변호사는 "아이가 보호되지 않은 상태가 잠시라도 있다면 유기의 위험은 발생한 것"이라며 "아동의 생명, 안전에 있어서 묵시적 의사라는 게 함부로 추정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혜명의 오선희 변호사도 "유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만 확대될까 걱정된다"며 "베이비박스 사건은 부모 이름도, 태어난 날짜도 알 수 없게 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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