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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보다 사치품에 더 열광하는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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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백만장자가 많은 도쿄, 럭셔리 사랑은 한국이 더 크다.
오랜 일본 생활을 접고 돌아온 직후에, 한국에서 소위 ‘명품’ 소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무척 높은 것이 다소 기이하게 느껴졌다. 매스미디어가 연예인이 걸친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해설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실제로 보통 사람들의 대화에서 누구는 결혼식 때에는 어떤 브랜드를 입었다던가, 누구는 고가의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선물받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상적인 대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살짝 충격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명품’ 사랑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백화점에 행렬이 생긴다든가, 고가의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 (매장이 영업을 개시하자마자 달려가서 구매하는 것) 사태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이런 상황이 자연스러운 일인 양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외부에서는 사치스러운 소비에 상당한 사회적 관심과 에너지를 쏟는 행태가 다소 병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일본도 사치품 사랑이 한국 못지않은 곳이다. 한국에서 소위 ‘명품’이라고 부르는 고가품을 일본에서는 ‘브랜드품(ブランド品)’이라고 부르는데, 도쿄나 오사카 등에는 ‘브랜드품’의 화려한 매장들이 즐비하고, 제품의 중고 매매도 꽤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다만, ‘브랜드품’은 극히 일부 부유층을 위한 사치품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또,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은 사회적 경험과 부를 충분히 쌓은 장년층, 노년층의 소비 문화라는 인식도 있다. 사치스러운 소비 행위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한국처럼 높지는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도쿄의 대표적인 고급 쇼핑 거리인 긴자(銀座)의 문화를 이끄는 것은 고령자들이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의 긴자 나들이는 차분하고 소박하다. 역사가 긴 노포에서 식사를 하고, 오래 사용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구입한 뒤, 지하철을 이용해 귀가한다. 간혹 긴자에서 마주치는 젊은 쇼핑객들은 십중팔구 한국이나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다. 도쿄는 뉴욕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도시라는 통계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구매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사치품에 대한 열망이 한국만큼 크지 않아 대조적이다.
◇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의 과시적 소비 경향이 커지는 중
과거 컨설팅 업체 매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45%가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이 ‘촌스럽다(bad taste)’고 평가했다고 한다. 동일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경우에는 22%만 그렇게 답했다. 10여 년 전에 실시된 조사인 만큼 이 수치를 지금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해외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박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패션과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층일수록, 해외의 럭셔리 브랜드는 ‘촌스럽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브랜드 로고를 큼직하게 박은 노골적인 디자인에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 아이템이 일명 ‘양키(ヤンキー)’라고 불리는 불량배의 애용품이라는 인식도 뿌리 깊다. 한편,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젊은이의 반응이 시큰둥한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등 사회적 적응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부모가 성장한 자식을 경제적으로 원조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대체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다. 일하느라 바쁘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는데, 취향에도 맞지 않은 럭셔리 브랜드를 굳이 구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사치품의 구매 연령이 점차로 낮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에는 60대 이상이었던 ‘브랜드품’의 주요 구매층이 30~40대로 확대되고 있고, 더 나아가 20대들도 럭셔리 브랜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불황으로 고생한 일본에서는 젊은 층의 소비 욕망이 되살아나는 것을 나쁘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일상을 공개할 수 있는 SNS가 과시적인 구매 욕구를 부채질한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SNS는 만인과 교류할 수 있는 열린 사교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더 화려하고 멋진 모습으로 스스로를 연출하고 싶다는 과시욕을 자극하는 욕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즉, 젊은이들이 여유롭고 화려한 삶을 연출하기 위한 소품으로서 사치스러운 소비를 기꺼이 선택하고, SNS 공간에서 자신의 소비를 과시한다는 풍조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다. 한편, 좀더 현실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설명도 있다. 젊은이들이 저축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과시적인 소비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노동 소득만으로도 부유층에 편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죽도록 일해도 자산 소득이나 금융 소득을 따라잡기 힘들다. 개인이 부지런히 절약하고 저축할 사회적 인센티브가 사라진 만큼, 눈앞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치스러운 소비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가설이다. 씁쓸하지만 납득하게 된다.
◇ 극강의 소비 사회, 서로 다른 소비 문화
2000년대 중반 도쿄에 살기 시작했을 때에 일본은 정말 ‘찐’ 소비 사회라고 느꼈다. 의식주는 물론이요, 오락, 여가, 건강, 의료 등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소비 행위를 통해 만족스럽게 해결될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상품과 서비스가 여간해서는 충족되기 어려운 마니아의 욕망까지도 꼼꼼하게 ‘케어’하는 극강의 소비 사회. 그것이 생활인으로서 실감한 일본 사회의 본질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도 그에 못지않은 고도의 소비 사회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즉시 구매할 수 있고, 상품과 서비스의 질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으니 말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 모두 고도의 소비 사회라고 해서 그 문화적 민낯이 같은 것은 아니다. 소비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소비를 통해 추구하는 욕망의 본질, 소비 행위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 등에서 한일 간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소비 행위가 사적인 취향과 개성, 서로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꾸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인 반면, 한국에서는 소비 행위 그 자체를 사회적 지위이자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럭셔리 브랜드 소비에 대한 한일 간 인식의 온도 차가 이런 차이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보다 주목하고 싶은 점은 젊은 층에서 한일 간 소비 문화의 차이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20, 30대 젊은 층의 과시적인 소비 경향이 보고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고급 외식 서비스 ‘오마카세’(おまかせ, 일본어로 ‘맡긴다’는 뜻으로 일식집에서 주방장이 내어주는 특선 메뉴를 말한다.)’나 고급 호텔에서 1박을 즐기는 ‘호캉스’ 등 적지 않게 돈이 드는 취미가 젊은 층에서 인기라고 한다. SNS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극복할 수 없는 빈부의 격차가 극명할수록, 한일 젊은이들이 과시적인 소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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