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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총력전' 펴던 정부, 주저앉은 성장률도 적극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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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인플레이션 완화에 총력전을 펼쳐 온 윤석열호(號)가 출항 1년여 만에 경제정책 뱃머리를 돌렸다. 경제 활력 제고를 최우선 목표로 내걸고 경기 진작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6%대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이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성장을 가로막는 대외 요인, 여전한 하반기 불확실성이 난제로 남아 있다.
기획재정부는 4일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은 1.4%(상반기 0.9%·하반기 1.8%)로 제시했다. 수차례 하향 조정한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이상 1.5%) 전망치보단 소폭 낮고, 한국은행(1.4%)과 같은 수준이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예상보다 저조한 상반기 수출·투자 실적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9년(0.8%)에 이어 2000년 이후 세 번째로 낮은 성적이다.
주저앉은 성장률과 달리 다른 경제 지표는 침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민간 소비를 떠받치는 취업자 수만 해도 올해 32만 명 증가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기존(10만 명)보다 3배 이상 확대된 규모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2.7%)이 21개월 만에 2%대에 진입한 데 이어, 연간 전망치도 당초보다 하락(3.5%→3.3%)할 것으로 예측됐다.
경기를 끌어내렸던 고물가 부담을 상당 부분 덜게 된 만큼 실물경기 호조세를 바탕으로 경기 반등을 이끌어 내겠다는 게 이번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전략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1순위 정책 목표였던 ‘거시경제 안정 관리’가 이번에 ‘경제 활력 제고’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야당이 주장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보다 수출·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쪽으로 막힌 맥을 풀겠다는 구상이다. 수십조 원의 돈이 풀릴 경우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방 차관은 “경기 반등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재원을 투입하는 일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물가 안정에 유의하면서 경제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 진작과 물가 관리를 병행하는 ‘투 트랙’으로 접근하겠다는 얘기다.
올해 ‘세수 펑크’가 40조 원에 달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만큼 정부는 우선 순세계잉여금(16조 원)과 통합재정안정화기금(12조 원) 등을 활용해 차질 없이 예산을 집행할 방침이다. 공공기관의 내년 사업 조기 집행을 하반기에 유도(2조 원 안팎)하고,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대출 등 정책금융 규모도 13조 원 확대(229조 원→242조 원)한다. 방 차관은 “가용재원이 충분하기 때문에 세수 부족 문제를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수출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반기 무역금융을 역대 최대인 184조 원 공급하고, 추가 지원 여력이 2,000억 원 정도 남은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현재 15조 원) 증액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올해 350억 달러의 해외 수주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지원금을 늘리고 세 부담을 줄여 투자 확대 여건도 조성할 방침이다. 하반기에 26조 원 안팎의 시설투자 자금을 공급하고, 수출 기업 대상 대출 한도 역시 상향(100억 원→150억 원)한다. 국내로 복귀한 반도체 등 첨단 유턴 산업에 대해선 투자금액의 절반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는 한편, 올해 연말까지인 외국인 기술자의 소득세 50% 감면 조치도 연장하기로 했다.
경제 체질 개선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해외 첨단 기업 인수합병 시 한국투자공사 공동 투자(6조6,000억 원), 혁신성장펀드(3조 원) 등 10조 원 안팎 금융 지원으로 첨단 산업 투자를 뒷받침할 방침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첨단산업벨트 15곳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도 4분기부터 신청해 신속 처리할 계획이다.
안정적인 물가 관리를 위해선 하반기 중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관세 없이 수입하는 농축수산물 품목을 확대하기로 했다. 2학기 학자금 대출 금리 동결(1.7%)과 비교적 저렴한 알뜰폰 5세대(5G) 중간 구간 요금제 출시(7월 중)를 통해 민생 부담도 완화한다. 내년 건강보험료율 인상 최소화 방안도 검토한다.
문제는 상반기 경기 부진을 이끈 대외 부문에서 반등 조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등 주요 국가의 금리인상 기조가 어떻게 될지,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반기 경기가 나아질 순 있겠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이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불안과 뚜렷한 회복세가 없는 반도체, 계속 오르는 가계부채 연체율 등 불안 요인이 크기 때문에 경기 진작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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