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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와 멀어지는 반국가세력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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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행사에서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이라고 지칭했다며 그 배경과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솔직히 학기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와중이라 제대로 뉴스를 챙겨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기자에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요."
평소에 소위 '협치'를 농반진반으로 유니콘에 비유하곤 했다. 다들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누구도 그것을 현실에서 목격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협치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다 보니,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협치의 의지가 없다는 식으로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사용되곤 한다. 결국 협치를 이상화할수록 현실의 정치는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를 좇다가 늙어버린 사냥꾼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협치를 추구하다 정치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여야 간 대립과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때도 큰 위기감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협치의 실종을 우려했지만, 대통령과 원내 제1당이 서로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여과 없이 내보이며 각자에게 헌법에 부여된 권한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도-물론 국회 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예상보다 무능하다는 점에 놀라기는 했지만-정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반국가세력' 발언은 협치는 고사하고 정치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여야 정당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러한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커서 중간에서 타협하기 어려운 상황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비록 내가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상대의 생각 역시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그래서 절반 가까운 유권자가 선택한 정당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협상이건 여론전이건, 혹은 하다못해 표대결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정치가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따라서 척결되어야 할 세력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이러한 전제 조건을 거부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을 염두에 두고 보수 유권자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절반의 진실만을 포착하고 있을 뿐이다. 전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지지층을 동원하는 것은 이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보여왔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발언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지만 야당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있는 무당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관심법을 사용하여 대통령의 본심을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바뀔 생각이 전혀 없으니 내게 야당과의 협력과 타협을 기대하지 마라. 내년 총선에서 여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따라서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소야대 구도가 지속된다면, 그 이전까지의 2년과 똑같은 3년이 반복될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통령 발언은 남은 임기 전체를 볼모로 한 정치적 협박으로 보아야 한다. 아니 '정치적'이라는 수식어도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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